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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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는 리뷰.

허름한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 도쿄로 진학하며 엄마의 소개로 마와타 장 하숙을 시작하는 대학 새내기 야마토, 외모 컴플렉스로 호감을 밝히지 못하는 구지라이와 그 여성을 사랑하는 대학 선배, 남성에 대한 불신으로 동성연애를 하는 쓰바키, 그리고 집주인인 와타누키와 또 다른 하숙인 남성과의 복잡미묘한 관계...

처음 읽고나서는 그들의 심리를 갈피를 못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졌다.

"이렇게 남남인 사람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은 그저 자고만 있었던 백 년 동안의 잠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깨어나는 일에 필적할 만큼 호사스러운 행운이랄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가진 고독과 인생의 아픔, 왜곡... 그러나 그러면서도 서로 아끼고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사랑을 비웃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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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으면 톡하지 말고 편지해 - 평범한 여자의 두메산골 살림 일기
야마토 게이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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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북알프스 지역의 깊은 산장에서 6월부터 9월까지 한철을 지내며 등산객에게 쉼터와 식사를 제공하며 지내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가 정감 넘치는 삽화가 함께 전개된다.

꿈과 낭만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꿈과 낭만과 함께 경악할 리얼한 오지 생활의 현실까지 절절히 느꼈다. 정말 '야생에서 살아남기'이다. 겨우내 산장을 비워놓기에 야생동물들의 달갑지만은 않은 방문, 식량을 다 해치워놓고 흔적도 남겨놓고... 그걸 일일이 치우려면 비위가 몇 번은 상하고 깜짝깜짝 놀랄 듯하다.

나는 어디까지나 '관리된 자연'을 좋아한다. 하천변을 산책하고 둘레길 걷는 것은 좋지만 벌레는 싫다. 도심 속의 공원이나 아파트 사이를 따라 흐르는 잘 가꿔진 작은 하천이면 족하다. 이 저자분은 정말 대단하다.

굉장히 훈훈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일러스트 전공자이지만 산을 오르는 게 더 좋다는 20대의 저자의 말에 '그럴 수도 있지요.' 하며 그대로 수용해 주었던 교수님의 말이 오늘의 저자를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인간 세계의 번잡함을 피해 도피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장생활이지만 지극히 작은 틀의 인간관계이기에 더더욱 좋은 대인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됐다. 어디를 가도 인간관계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이 싫은 이상한 성향을 가진 나는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산다. 남 험담하고 뒷담화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공감능력 부족한 사람들을 되도록 거르지만 세상에 100% 무해한 사람은 없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 주고 무심하게 대할 것이다. 피하지 말고 품으며 사는 게 오히려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산장생활은 거칠지만 낭만도 있다. 저자가 산장에 들어가 있는 동안 지인들에게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함께 편지를 쓰신다는데 참 낭만적이다. 손편지는 언제나 정답다. 또 곰이 카레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텅 비어 있는 카레 솥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할 것 같다. 그리고 곤들메기 낚시라니, 낚시 자체보다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세찬 골짜기의 힘있는 강물 등 마냥 바라보며 앉아있고 싶어졌다.

산장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좀 무너졌지만 단단히 각오하고 그 산에 오르고 산장에서 카레 한 그릇 먹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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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 - 책과 드라마, 일본 여행으로 만나보는 서른네 개의 일본 문화 에세이 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 1
최수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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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 전문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신 저자분이 독서와 여행을 통해 세심하게 관찰한 일본 문화에 관한 짤막짤막한 이야기 34가지를 담은 에세이이다. 다음의 6개의 주제로 묶은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읽기 쉬우면서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일본의 책 문화와 서점,

일본을 걷는다,

책과 드라마로 만난 일본,

일본의 장인 정신,

일본 문화 체험,

일본 문화 에세이



일전에 어떤 책을 보니 책을 읽고 가능하다면 작가를 꼭 만나보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을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아사이 료와의 만남은 그 사실을 확인한 좋은 자리였습니다. (51쪽)



아사이 료 작가가 2014년에 우리나라에 왔을 때 독자와의 만남에 참석하셨다고 한다. 아사이 료 작가는 『누구』라는 책을 통해 나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작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으로 출퇴근하며 출근 전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전업 작가로 전향했는지 여전히 겸업으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는 취업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전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해 깊이 통찰한 책이어서 20대 작가의 그 예리함과 섬세함, 깊이에 깜짝 놀랐다. 그러고 나서 이 작가의 작품을 기획해 보고 싶어서 평이 좋은 에세이를 몇 권 읽었는데 그 소설에서 만났던 감동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헤이세이 세대, 즉 일본의 신세대로 대표되는 작가로서 세상을 보는 시각은 재미있고 필력이 가볍고도 통통 튀어서 재미있긴 했다.

 





그리고 소소한 일본 생활담이 추억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일본인 세 명, 서양인 한 명, 그리고 저자 이렇게 다섯 명이 함께 살았던 셰어하우스의 이야기, 온천과 동네목욕탕, 심야 레스토랑 이야기 등이 재미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따로 기숙사가 없어서 여성 전용 기숙사에서 지냈었는데 지방에서 상경하여 직장 생활하는 일본인들, 외국 유학생들이 몇 십 명 살았던 곳이다. 제작년에 갔을 때는 이미 사라져 있어서 서운하긴 했지만 그때도 낡은 목조 건물이어서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있으리라고 기대도 하지 않긴 했다.



당시의 나는 일본에 대단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일본 문화를 많이 경험해보고 싶다거나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과생으로서 영어와 일어 양쪽을 어느 정도 하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략과 또 취직하기 전에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외국에서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1년 반의 일본행을 택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저 생활인처럼 학교와 기숙사를 왔다갔다 하고 가끔 산책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정도였다. 적극성이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여행도 많이 다니지 않았고 많은 경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는 게 좀 아깝다. 모든 게 살과 피가 되는 것인데,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이 특히 좋았던 것은 일본 문화에 관한 저자분의 담론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의 시각이 잘 담겨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프리터를 선택하는 것이 꼭 취업시장에서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기 일을 스스로 창조하는 여성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 등이다. 저자 자신도 십 년 이상 근무하던 직장을 퇴사하고 1인 출판사를 차린 멋진 분이다.



나는 매우 전통적이고 틀에 잡힌 면이 없지 않아 불가피한 상황에 몰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회사를 관두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제도권에 의해 보호받는 것을 택하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남편과 맞벌이, 금전적으로도 어느 정도 대등한 수준이었기에 어느 쪽이든 비상상황이 생기더라도 한쪽이 경제활동을 하면 가정 경제에는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을 애초에 목표로 했다. 지금도 회사에 있었더라면, 경력 16년차 금융권 직원이었더라면 내 연봉이 어느 정도 수준일 것이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끊어버린 다리였고 그 다음 길을 찾는 것은 정말 막막한 일이었다. 늘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것은 성실하게 해 왔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정글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평생 일을 할 것을 생각했기에 전업주부라는 보기는 없는 문제였다. 그런 고민을 해 봤기에 저자분이 선택한 길과 그 추진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프리터의 삶에 대해 나도 예전에 들었던 것 같은 인식은 없고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지금 프리터와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프리터도 자기의 전문적인 것이 없다면 20, 30대에는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지는 않을 수 있지만 40, 50대 그리고 노후에 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오지랖 넓게 들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지막 에세이의 제목이다. 결론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주제는 남자들에 관한 게 아니라 여자들에 관한 것이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이기에 가능한 일들이 많기에 최대한 즐기라고 하고 싶다. 차곡차곡 경제적인 면에서나 사회적인 면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은 그 전제일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면 기혼자이기에 가능한 행복을 맘껏 누리라고 하고 싶다. 내 주위에는 결혼하고 만난 관계가 아니라 이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들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특히 아주 친밀한 관계의 경우는 더 그렇다. 교육을 마치고 대부분 취직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길이 어느 정도 정해진 남성과 달리, 여성의 길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렇기에 서로의 입장이 너무나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주는 경우도 많고 질시와 시기가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프레임으로 언론에서 반목을 부추기는 것도 아주 악질적이라고 생각한다. 기혼과 비혼, 워킹맘과 전업맘, 남편의 경제수준에 따른 가정 형편, 자녀의 유무 등등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여 서로 비교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누구와 함께 있든 자기의 인생이니 그 인생의 주인으로서 후회 없는 삶을 살면 좋겠다.



짧은 책이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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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소용돌이 안내소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전화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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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6년씩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소용돌이. 인연과 인생의 이야기.

몇 번을 목구멍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는지 모른다.

여섯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연작 단편집인데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다음 에피소드의 조연이 되기도 하여 그 고리를 찾아보는 것이 묘한 재미이다. 그것이 인생 아닐까? 우리 연자 언니 노래처럼 각자 한 편의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어느 장면에서는 내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또 어느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친구, 혹은 지나가는 사람 1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얽히고설키는 인생이 정답지 않은가?

일본인들이 가지는 연호에 대한 감각을 한국인인 내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왕이 바뀔 때마다 시대가 바뀌는 것이다. 작년에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고 아들에게 일왕을 물려주면서 연호가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바뀌었다. 하나의 매듭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88년도 아재 개그라고 하듯이 그들은 쇼와 같은 개그라고 한다. 우리가 x세대, y세대 운운하듯이 그들은 1989년에 시작된 헤이세이 세대는 이전의 쇼와 시대와는 다른 신세대의 느낌이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19년 즉, 작년 헤이세이가 끝난 시점에서 6년씩 거슬러 올라가며 여섯 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쿄 근교의 바닷마을 가마쿠라의 상점가의 한 구석에서 시공간이 뒤틀리며 '소용돌이 안내소'라는 곳에 이르는 여섯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각각의 고민을 안고 있다. 직장에 있어서의 진로와 꿈, 자녀와의 문제, 결혼을 앞둔 여성의 망설임, 교우 관계에서의 어려움, 진정 하고 싶은 것과 '참 잘했어요' 사이에서 망설이는 중년남성, 32년 전에 자신의 마음과 달리 세상의 통념에 따라 내친 인연을 만난 고서점 주인 등등.

이들은 소용돌이 안내소에서 쌍둥이 노신사와 살아있는 암모나이트 화석을 만나며 신비한 엷은 푸른색의 항아리 속에서 자신들에게 힌트가 될 물건들을 하나씩 만난다. 그것은 각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모기향, 가마, 김초밥, 높은음자리표, 하나마루, 소프트아이스크림...

어떻게 이렇게 누에가 실을 풀어내듯 희한하게 스토리를 전개하는지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이 작가의 데뷔작부터 단행본은 모두 읽어봤는데 정말 내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그냥 나는 흘러서 도착한 곳에서 그때그때의 최선이 일으켜 줄 기적을 믿었어. 예상치 못한 전개로 다음 문이 열리는 게 재미있거든. 그건 회사원이든 프리랜서든 마찬가지야. 그때그때의 최선의 결과,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가마쿠라 소용돌이 안내소> 59쪽

나도 그러하다.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 그때그때 만나는 일... 그러나 최선을 다했고 진심으로 대해왔다. 원통스러울 정도로 분하고 화나는 만남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신념이랄까, 신조랄까... 나는 내가 품은 대로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길이 열리기도 했고 소중한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안목도 생긴 것 같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취해야 할 것과 걸러야 할 것을 보는 차분한 눈이 생긴 것 같다.

내 품에서 볼이 통통한 신고가 헤헷 웃었다. 그래, 이 얼굴. 이 아이가 이렇게 웃는 거보다 더 황홀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지금 신고 곁에 있어 주지 않았다.

뒤에서 몰고 앞에서 억지로 잡아당기고 위에서 지시를 내렸다.

<가마쿠라 소용돌이 안내소> 120쪽

눈물이 찔끔 났다. 사람이란 망각의 존재이다. 특히 기억력이 좋지 않고 현재에 몰입하는 나같은 사람은 과거가 보이지 않는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나는 기록을 남기지 않고 정말 바람처럼 살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마구 세세히 기록을 하다가도 죄다 한순간 찢어 처분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역사를 사진으로든 문자로든 기록해두고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곁에 있어 주고 싶다.


예전에 비디오를 볼 때는 '되감기' 기능이 있었다. 우리가 때로는 인생을 되감기 해봐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우리를 오늘까지 있게 한 역사를 그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책 한 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그 시작은 나무 한 그루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피차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지만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의 시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책으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윤기가 도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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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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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설명 필요 없이 정말 스릴 넘치고 숨막히는 소설을 만났다. 띠지에 1위 기록이 너무 많이 새겨져 있어 빈 수레가 요란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푸른 바탕에 서늘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여성이 옆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어제 책을 받아 늦은 밤에 시작하여 끝을 보지 못하고 300여 페이지를 읽고 오늘 다 읽었다.

(스포 있음)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쇼걸이었다가 이제 초호화 럭셔리 호텔의 최고 쇼의 안무가로 변모한 티나는 아름답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사랑하는 12살 아들 대니를 잃은 지 1년이 지나도록 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에 몰두하며 잊으려 했지만 요즘 들어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미처 치울 수 없었던 대니의 방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물건들이 떨어지기도 하고 칠판에 '죽지 않았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대니의 죽음에 대해 티나를 탓하고 사악하게 굴고 결국 이혼한 전 남편 마이클을 범인으로 생각하고 마이클을 찾아가 추궁해보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슬픔으로 문드러져가는 티나의 가슴 속과 달리 티나가 안무가 및 제작자로 참여한 쇼는 VIP 시사회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시사회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부인과 3년 전에 사별한 변호사 엘리엇은 다정하고 절도 있는 좋은 남자였다. 이제는 티나의 집 뿐만 아니라 티나의 사무실 등에도 티나에게 계속 대니가 죽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그녀는 엘리엇에게 상담을 하고 엘리엇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실은 티나는 대니의 시신 확인을 하지 않았었다. 너무 훼손이 심하다는 말에 확인을 하지 않았다. 티나는 아무래도 대니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엘리엇은 관을 열어 시신 확인을 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준비한다. 그러면 티나의 마음이 정리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믿을 수 있는 판사에게 상담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엘리엇과 티나, 그리고 티나의 전 남편 마이클까지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쫓긴다.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어둠의 눈, 249쪽』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아무 거부감 없이 바로 이야기에 빠져들어갔는데 엘리엇과 티나와 정체 모를 사람들의 추격전이 시작되면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피칠갑하는 호러물은 전혀 즐기지 않지만 이런 스릴로 심장이 꽉 죄어드는 듯한 스릴러물은 너무나 좋아하기에 숨을 죽이고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 티나가 말한 밤과 그림자, 어둠의 눈이 감시하고 있는 듯한 그 오싹한 느낌은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이 책의 영어 원서 초판 발행은 1981년이다. 저자가 니콜스라는 필명으로 집필한 책이라고 한다. 40년 전... 1980년대 내가 유년시절과 초등시절을 보냈던 그 시기는 전 세계적인 냉전 시대였고 초등학교에서도 반공 홍보 책자 같은 것을 배부받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치적으로는 무척 심각한 대치 구도였지만 작가들에게는 문학적 소재와 상상력을 자극하여, 특히 정보요원, 스파이 소설 등이 매우 융성했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도 그 큰 흐름을 따른 것 같은데 약간의 SF적 요소, 초자연적 요소가 가미되어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해 준다. 개인적으로 초자연적 요소라든가, 폴터가이스트, 엑소시즘 등의 호러 요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치밀하고 이성적이고 궁리를 많이 한 짜임새 있고 빈틈 없는 추리와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뭔가 초자연적 요소에 의존하여 쉽게 지름길로 가려는 듯한 느낌도 들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에는 살짝 김이 빠졌지만 그럼에도 심장이 쫄아드는 듯한 그 스릴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정의를 위한다며 온갖 악을 행하는 조직보다 양심의 소리를 듣는 개인들에 관해 말하는 엘리엇의 아래 대사가 무척 공감이 되었다.

나는 이제 어떤 조직보다 개인들이야말로 훨씬 더 책임감 있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래서 우리가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거죠.

『어둠의 눈, 381쪽』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 시점에 코로나 19를 예견했다고 하니 정말 궁금했는데 그 정체가 밝혀지니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음모론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대략 믿는 편이다. 귀가 결코 팔랑팔랑 가벼운 편은 아니지만 그런 음모가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 인간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깐밖에 등장하지 않는 그 바이러스의 존재가 결국은 450페이지 분량 전체를 만들어낸 결정적 요소이다. 그리고 참 작가의 대단한 센스에 놀란 것이 한번도 등장하지도 않는 책임자의 이름이 일본 사람 이름이다. 일본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731 부대 등 생체 실험 등으로 악명이 높지 않은가?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일본인의 이름을 미치광이 책임자의 이름으로 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장 첫 문장에서부터 빠져들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고 아이를 잃은 그 슬픔과 간절함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을 일관적으로 끌고 갔기 때문일 것이다.

40년 전의 소설이지만 전혀 그런 느낌 없이 정말 몰입하여 읽었던 책이다. 영화화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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