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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으면 톡하지 말고 편지해 - 평범한 여자의 두메산골 살림 일기
야마토 게이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일본의 북알프스 지역의 깊은 산장에서 6월부터 9월까지 한철을 지내며 등산객에게 쉼터와 식사를 제공하며 지내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가 정감 넘치는 삽화가 함께 전개된다.
꿈과 낭만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꿈과 낭만과 함께 경악할 리얼한 오지 생활의 현실까지 절절히 느꼈다. 정말 '야생에서 살아남기'이다. 겨우내 산장을 비워놓기에 야생동물들의 달갑지만은 않은 방문, 식량을 다 해치워놓고 흔적도 남겨놓고... 그걸 일일이 치우려면 비위가 몇 번은 상하고 깜짝깜짝 놀랄 듯하다.
나는 어디까지나 '관리된 자연'을 좋아한다. 하천변을 산책하고 둘레길 걷는 것은 좋지만 벌레는 싫다. 도심 속의 공원이나 아파트 사이를 따라 흐르는 잘 가꿔진 작은 하천이면 족하다. 이 저자분은 정말 대단하다.
굉장히 훈훈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일러스트 전공자이지만 산을 오르는 게 더 좋다는 20대의 저자의 말에 '그럴 수도 있지요.' 하며 그대로 수용해 주었던 교수님의 말이 오늘의 저자를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인간 세계의 번잡함을 피해 도피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장생활이지만 지극히 작은 틀의 인간관계이기에 더더욱 좋은 대인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됐다. 어디를 가도 인간관계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이 싫은 이상한 성향을 가진 나는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산다. 남 험담하고 뒷담화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공감능력 부족한 사람들을 되도록 거르지만 세상에 100% 무해한 사람은 없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 주고 무심하게 대할 것이다. 피하지 말고 품으며 사는 게 오히려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산장생활은 거칠지만 낭만도 있다. 저자가 산장에 들어가 있는 동안 지인들에게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함께 편지를 쓰신다는데 참 낭만적이다. 손편지는 언제나 정답다. 또 곰이 카레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텅 비어 있는 카레 솥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할 것 같다. 그리고 곤들메기 낚시라니, 낚시 자체보다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세찬 골짜기의 힘있는 강물 등 마냥 바라보며 앉아있고 싶어졌다.

산장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좀 무너졌지만 단단히 각오하고 그 산에 오르고 산장에서 카레 한 그릇 먹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