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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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설명 필요 없이 정말 스릴 넘치고 숨막히는 소설을 만났다. 띠지에 1위 기록이 너무 많이 새겨져 있어 빈 수레가 요란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푸른 바탕에 서늘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여성이 옆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어제 책을 받아 늦은 밤에 시작하여 끝을 보지 못하고 300여 페이지를 읽고 오늘 다 읽었다.

(스포 있음)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쇼걸이었다가 이제 초호화 럭셔리 호텔의 최고 쇼의 안무가로 변모한 티나는 아름답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사랑하는 12살 아들 대니를 잃은 지 1년이 지나도록 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에 몰두하며 잊으려 했지만 요즘 들어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미처 치울 수 없었던 대니의 방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물건들이 떨어지기도 하고 칠판에 '죽지 않았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대니의 죽음에 대해 티나를 탓하고 사악하게 굴고 결국 이혼한 전 남편 마이클을 범인으로 생각하고 마이클을 찾아가 추궁해보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슬픔으로 문드러져가는 티나의 가슴 속과 달리 티나가 안무가 및 제작자로 참여한 쇼는 VIP 시사회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시사회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부인과 3년 전에 사별한 변호사 엘리엇은 다정하고 절도 있는 좋은 남자였다. 이제는 티나의 집 뿐만 아니라 티나의 사무실 등에도 티나에게 계속 대니가 죽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그녀는 엘리엇에게 상담을 하고 엘리엇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실은 티나는 대니의 시신 확인을 하지 않았었다. 너무 훼손이 심하다는 말에 확인을 하지 않았다. 티나는 아무래도 대니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엘리엇은 관을 열어 시신 확인을 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준비한다. 그러면 티나의 마음이 정리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믿을 수 있는 판사에게 상담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엘리엇과 티나, 그리고 티나의 전 남편 마이클까지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쫓긴다.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어둠의 눈, 249쪽』

첫 페이지 첫 문장부터 아무 거부감 없이 바로 이야기에 빠져들어갔는데 엘리엇과 티나와 정체 모를 사람들의 추격전이 시작되면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피칠갑하는 호러물은 전혀 즐기지 않지만 이런 스릴로 심장이 꽉 죄어드는 듯한 스릴러물은 너무나 좋아하기에 숨을 죽이고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 티나가 말한 밤과 그림자, 어둠의 눈이 감시하고 있는 듯한 그 오싹한 느낌은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이 책의 영어 원서 초판 발행은 1981년이다. 저자가 니콜스라는 필명으로 집필한 책이라고 한다. 40년 전... 1980년대 내가 유년시절과 초등시절을 보냈던 그 시기는 전 세계적인 냉전 시대였고 초등학교에서도 반공 홍보 책자 같은 것을 배부받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치적으로는 무척 심각한 대치 구도였지만 작가들에게는 문학적 소재와 상상력을 자극하여, 특히 정보요원, 스파이 소설 등이 매우 융성했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도 그 큰 흐름을 따른 것 같은데 약간의 SF적 요소, 초자연적 요소가 가미되어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해 준다. 개인적으로 초자연적 요소라든가, 폴터가이스트, 엑소시즘 등의 호러 요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치밀하고 이성적이고 궁리를 많이 한 짜임새 있고 빈틈 없는 추리와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뭔가 초자연적 요소에 의존하여 쉽게 지름길로 가려는 듯한 느낌도 들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에는 살짝 김이 빠졌지만 그럼에도 심장이 쫄아드는 듯한 그 스릴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정의를 위한다며 온갖 악을 행하는 조직보다 양심의 소리를 듣는 개인들에 관해 말하는 엘리엇의 아래 대사가 무척 공감이 되었다.

나는 이제 어떤 조직보다 개인들이야말로 훨씬 더 책임감 있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래서 우리가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거죠.

『어둠의 눈, 381쪽』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 시점에 코로나 19를 예견했다고 하니 정말 궁금했는데 그 정체가 밝혀지니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음모론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대략 믿는 편이다. 귀가 결코 팔랑팔랑 가벼운 편은 아니지만 그런 음모가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 인간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깐밖에 등장하지 않는 그 바이러스의 존재가 결국은 450페이지 분량 전체를 만들어낸 결정적 요소이다. 그리고 참 작가의 대단한 센스에 놀란 것이 한번도 등장하지도 않는 책임자의 이름이 일본 사람 이름이다. 일본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731 부대 등 생체 실험 등으로 악명이 높지 않은가?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일본인의 이름을 미치광이 책임자의 이름으로 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장 첫 문장에서부터 빠져들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고 아이를 잃은 그 슬픔과 간절함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을 일관적으로 끌고 갔기 때문일 것이다.

40년 전의 소설이지만 전혀 그런 느낌 없이 정말 몰입하여 읽었던 책이다. 영화화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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