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량의 사랑 - 대만 여성 작가 샤오사 현대소설 선집
샤오사 지음, 김은희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만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되어 어떤 느낌일지 호기심과 동시에 약간의 조바심도 들었다.

샤오사의 단편집 <내 아들 한성> 에서 <실험영화제, 1978>, <내 아들 한성, 1978>, <렌전마마, 1978>, <제목없는 그림, 1979>을 채택하였고, <웨이량의 사랑> 단편집에서 <웨이량의 사랑, 1986>, <홍콩친척, 1986>을 선별하여 엮었다.

이 첵을 읽기에 앞서 먼저 중국과 대만과의 정치적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이 70~80년대에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 당시 세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과도기적인 배경은 흡사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한 것을 볼수 있다.

특히 여성들의 자의식, 사회참여, 개방적 사랑의식과 가부장적인 남녀관계 등이 작품곳곳에서 보여진다.

전반적으로 흐르는 느낌은 여성의 사랑에 대한 한탄조의 그런 멜로식이 아닌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사랑으로 인한 상실앞에 너무도 담담하게 슬픔마져도 숙성시킨 듯한 마치 눈물을 더이상 쏟아낼 힘도 없을때의 그런 허탈한 느낌마져 들었다.

표제작인 <웨이량의 사랑>은 작가 자신의 드라마틱한 사연이 어느 정도 혼재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그녀의 불행했던 어린시절과 후에 남편과의 파경 또한 커다란 충경을 안겨 주었다. 누군가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상처가 너무도 깊게 배어 자신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자신의 삶이 산산조각나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상처도 면역체가 되듯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게하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깨우친 것은 상처로 인한 아픔 뒤에는 타인에 대한 비난보다는 이해의 감정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샤오사는 작품 전반에 걸쳐 인간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운명 앞에서 원망과 회한의 감정이 뒤섞인 오묘한 감성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무심한듯 마치 체념한 듯한 눈으로 먼곳을 바라보며 말을 하듯 그려내어 더 가슴이 서늘하다.

예기지 못하게 발견한 샤오사의 이 선집은 내게 또하나의 사랑에 대한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막상 맞딱뜨리게 되면 오히려 당당히 맞서기보다는 수동적인 자세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력감, 사랑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위안를 가져다 줄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본문 속 밑줄>

--------------------------------------------------------------------------------------

<웨이량의 사랑>

 

삶이란 곳곳에 공포 투성이었다. 농약도 두려웠고, 오염도 싫었고, 방사능진도 무서웠다. 잔인한 살인도, 무었보다도 .... 남편의 외도는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끝내 찾아오고야 말았다.(10) 

 

웨이량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한 뒤로 생활 속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제외하고 나면 , 정말로 다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48)

 

나는 처음에 내 스스로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햇어.

그런데..... 나는 이미 길들여져 있더라고... 아예 떠날 수가 없었던 거야.

더 몹쓸것은 ... 내겐 ... 당신밖에 없다는 사실이야... 당신밖에.....(71)

 

<홍콩 친척>

이렇게 사는 자신이 일하는 기계 같다면서, 지신이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자문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이 한순간에  여유를 갖게 되자 그것 또한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254)

 

<제목없는 그림>

보내고 맞아들이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을 쭉 지켜보며, 그의 얼굴에는 그렇게도 냉담하게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마음 저 밑바닥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일렁이고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2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 그는 한번도 황제였던 적도, 황제로 군림해 본적도 없었던 베일에 가려진 그의 삶을 들여다 볼수 있게 해 준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순종의 나약함이 내심 못마땅했다. 물론 나는 순종의 입장을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신하들의 간교를 알고도 말한마디 못하고 속으로만 속앓이하는 모습이 답답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황제의 최후는 그렇게 늘 쓸쓸하고 고독하게 끝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역사를 통해 알수 있었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순종이 나약한 왕이라는, 굴욕적인 망국의 왕이라는 이유로 묻혀버리고 만 것에 대해 그는 순종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시대에서도 최고가 아니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제 이인자 또는 꼴찌는 숨죽이고 살수 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상대방이 조금만 나약해 보여도 금세 짓밟고 쓰러뜨려야만 살아남는다는 강박 속에서 힘없는 자들은 점점 그들의 자리를 내어줄수 밖에 없다.
그당시 일제 치하에서 순종을 둘러싼 신하와 조정에서는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우선 자신의 안일만 추구하다보니 자신의 황제마져 종이 인형으로 조종하도록 내어 주고 말았다.
지금의 정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은 흘렀어도 권력자들의 마음은 변하질 않았다. 국민을 위하기보다 자기의 부와 권력을 위해서는 국민들을 우롱하고 속이는 데는 변합이 없다.
그당시 안중근은 순종이나 그의 동생 유길마져도 그를 정신나간 행동이 앞서는 분간못하는 사람으로 매도했을 정도이다 그만큼 일제의 영향력에 너무 길들여져 있엇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고 늘 원한을 품고 있는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순종이 굴욕스런 가운데도 어쩔수 없이 살아남아야 했던 것은 이기는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쿠마이의 시빌라'와 같은 죽음보다 못한 황무지에서의 생의 의의를 상실한 그런 삶을 살았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도 감옥같은 궁궐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고 죄수복을 벗어 던지고 싶었던 한 인간이었다.
------------------------------------------------------------------------------------ 

<본문속 밑줄> 

 나라 잃은 백성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슴 터지는 울음을 참고 흐느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 내 귓속을 가득 메웠다. 소리없는 대지가 일어나 내 눈을 메워왔다. 소리없는 말발굽이 되어 내 몸을 짓밟아왔다. 내 몸을 짓밟는 대신 그들 자신의 가슴을 스스로 짓밟으며 달려왔다.(47) 

창밖으로 바깥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멀리 산들이 어미 잃은 망아지처럼 달아나고. 밭과 논이 갈 곳잃은 물인양 흘렀다. 가끔 나타난 낮은 초가지붕은 겁먹은 들개같이 웅크린채 밀려났다.(50) 

폐왕이 된 뒤로 궁궐은  곧 감옥으로 돌변했고, 왕의 옷은 죄수복이 되고 말았다.(58) 

세상의 모든 아비에게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자식이다.(99) 

부서지든 깨어지든 부딪쳐봐야 했다. 돌아보면 어리석음의 연속이었다. 바다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파도가 무서워 가까이 다가가길 꺼렸다. 민생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백성의 삶에서 풍기는 악취만 생각하고 물러서기만 했다.(104) 

그 흔들림에 시달리면서 나는 우리 대한의현실이 꼭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처럼 귾임없이 흔들리는 영토에 몸을 맡기고 현기증과 구토에 시달리는 백성, 그것이 곧 우리 한국인이었다.(118) 

돌이켜보면 아바님의 왕손들은 모두 세상 나오길 꺼렸다. 그들은 모두 세상이 무서운 것이다. 아니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 버거운 것이다. 그들은 뱃속에서, 정낭 속에서부터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모두 읽어내고감옥같은 왕좌에서 탈출한 것이다.(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티리콘 - 노먼 린지 일러스트판
페트로니우스 지음, 강미경 옮김, 노먼 린지 그림 / 공존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저자 :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강미경 옮김)  
  • 일러스트 : 노먼린지
  • 출판사 : 공존(2008.3.20 1판 1쇄), 516쪽 

 

현존하는 最古소설로 1세기에 쓰인 풍자소설이자 惡漢소설의 원형이 된 책으로 아폴레이우스가 2세기에 쓴 <황금당나귀>보다 100년이상 앞섰다.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도덕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고매하고 고상한 분들은 이책 읽기를 권하지 않을 것을 먼저 말해두어야 하겠다.

이 책을 보기전까지 페트로니우스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해야겠다. 그만큼 역사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페트로니우스는 로마시대의 정치가이자 네로황제의 품위판관을 지내기도 했다.

엔콜피우스라는 검투사를 비롯해서 얼치기 시인, 남색가, 벼락부자 등등 여러인물들이 펼치는 갖가지 음란행위와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에피소드처럼 산문과 운문으로 쓰여졌다.

또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무엇보다 잘 반영해주었다는데 나는 큰 표를 던지고 싶다.

1세기 로마시대의 인간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의 몰락과 성의 타락, 대자연과 운명앞에 나약한 인간들에 대한 풍자, 그리고 네로황제와 귀족에 대한 신랄한 조롱 등이 운문과 산문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책을 읽고 나서 노트에 정리하면서 보니 이 책 안에는 철학, 시학, 경제학, 사회학 등 모두가 들어 있음을 뒤늦게서야 발견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나는 중요한 것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것과 수많은 작가들(헨리크시엔키에비치, 오스카와일드, TS엘리엇, 스콧피츠제럴드 등)이 이 작품을 모티브로해서 작품을 쓴 것이다.

또한, 영화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역작 [페데리코.사티리콘]의 원작이 되었던 책이다.

이 책은 <율리시스>와 마찬가지로 외설적이라하여  미국법정에 오르기까지 했으나 기각되었다.

그 판결내용은 너무나 멋지다.

"어느 한 부분만 보고 문학작품에 유죄판결을 내릴수는 없다. 고대의 예술 및 문학 작품을 현대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사티리콘을 규제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로마인의 실제 삶을 공부할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과 다를바 없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서술하고 해석하는 영역이므로 단순히 인간 본능의 한 측면에 대한 해석으로 한정할수 없다"

satyricon은 라틴어 satyricum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티로스극을 의미하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공연이 끝난후 기분전환용으로 무대에 올린 희극이다.

현존원문은 전체가운데 14~16권의 일부에 해당하며 소실이많이 되어 원본이 아닌 사본을 번역한 책이다.

<트리말키오의 연회>와 <에페수스의 과부>이야기 등은 작가들에 의해 각색되고 재현되는 소재로 많이 쓰여왔다.

그 한 예로 오스카와일드의 작품인 <도리언그레이의 초상>의 주인공을 <사티리콘>의 주인공과 비교되자 비평가들이 부도덕하고 저속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오스카와일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예술작품이 어떻게 도덕의 관점에서 비판당할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사티리콘은 내가 알기로 라틴어를 번역문으로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등생들 사이에서조차 인기가 높다" 
 

<본문속 밑줄>
 ------------------------------------------------------------------------------------

우리아이들이 보는 것이라고는 쇠사슬에 묶인채 해변에 서있는 해적과, 아들에게 자기 아버지 목을 베어오라는 명령이나 내리는 폭군과, 역병이 돌면 조언이랍시고 처녀서너명을 바치라고 말하는 예언자가 전부이지 않습니까. 하나같이 쓸모없는 사탕발림일뿐 보고 듣는 행동하나하나와 말한마디가 허섭쓰레기에 지나지 않으니 원(15~16)

부모들은 자식을 망쳐놓기 일쑤지. 그들은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모든걸, 심지어 자식의 꿈마져도 희생하지. 그러고는 지성이 아직 채 여물지 못한 이들을 공직생활로 내모는데 급급하지. 그들은 웅변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고 말하면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웅변가로 만들려고 하지 부모손에 억지로 등떠밀려 공부를 해야하다니

오늘날의 학생들은 경박하기 짝이 없으며, 공직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현실은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어렸을때  배운 실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일세(21~22)  <교육의 폐단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는데 요즘과 별 다를바 없다>

가난이 어디서 무슨 승리를 거둘수 있으리?

세상을 조소하는 견유학파조차 지갑을 채울 수만 있다면 법에 무슨 정의가 있으리오.

중요한 것은 흥정이지!

재판관의 직무는 값을 매기는것.(41)  

우리는 걸어다니는 공기주머니에 불과합니다. 파리보다 못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지요. 파리는 적어도 웬만큼 내공을 지니고 있지만 우린 속이 텅텅 빈 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111)

지성연마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돈과의 인연이 멀어지기 때문이지 온갖 유혹을 등지고 너무 올곧게만 살다보면 금새 미움을 사게되는 법. 자기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아닌

돈 모으는데 관심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나아 보이는 걸 가지고 있는 꼴을 못견뎌하지. 그래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능력이 없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선전해 대며 조롱하는 것이라네 여하튼 가난은 재능과 쌍둥이 자매인 듯하이.(225~226)

주색에 빠져 지내며 전통에 빛나는 예술작품조차 공부하려들지 않네. 달변이 되게 해달라거나 철학의 근원에 다가가게 해달라고 신전을 찾아 기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건전한 정신이나 육체를 바라기보다 신전문턱을 채 넘어서기도 전에 부자친척이 죽게 해달라고, 보물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돈벼락을 맞게해 달라고, 그러면 그 즉시 공물을 바치겠다고 비는 사람들 밖에 없지 않은가(233)  /<요즘의 종교신앙인들의 잘못된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개간하지 않은 거친 땅에서는 눈이 오래 쌓여 있지만 쟁기질한 땅에서는 서리가 내려도 말하는 사이에 녹아 없어지는 법입니다. 사람의 가슴에 쌓인 울분도 마찬가지로 깨우치지 못한 마음은 분노에 숨이 막히지만 잘 갈이질한 마음은 금세 분노를 털어버리지요.(267)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들은 모두에게 공짜가 아닌가? 태양은 만인을 비추고, 달은 무수한 별과 함께 짐승도 풀밭으로 인도하나니. 물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만 온 세상에 흐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당하게 손에 넣은 상이 아니라 몰래 훔친 물건은 사랑밖에 없단 말인가?

아무리 좋은 것도 사람들이 시샘하지 않는다면 욕심이 나지 않는법.(269)

지금까지 시는 수많은 사람을 속여 왔다네. 그 결과 사람들은 운율울 고르며 정묘한 시어 안에 어떤 생각을 짜 넣는 순간 엘리콘산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법정업무에 지치면 폭풍을 피해 안전한 항구를 찾듯 종종 시의 고요한 바다로 날아가는 걸세

번득이는 촌철로 빛을 발하는 연설보다 시를 짓는 편이 훨씬 더 쉽다고 믿으면서 말일세.

고귀한 영감은 속이 텅빈 장광설을 혐오하고, 걸작의 힘찬 물살에 푹 젖어보지 못한 정신은 열매를 맺지 못하거늘. '나는 속된 군중이 싫어 그들을 멀리한다'를 좌우명으로 삼아 저속한 언어를 피하고 남들이 잘 쓰지 않는 표현을 골라야 하는법. 재치 넘치는 문장은 이야기 몸체와 별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의 짜임새에 나름의 색깔과 광채를 더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터.

시에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속박에서 풀려난 영감은 재치의 쇠뇌에서 곧장 은밀한 전언과 신들의 개입으로 날아올라, 보는 이에게 정확하고 진지한 진술보다는 광기어린 예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지.(327)   /<시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변이라고 볼수 있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편견만큼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없고, 도덕주의자인 척하는 위선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다.(3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작가 : 이탈로 칼비노(1923~1985) 
  • 작품 : 거미집으로 가는오솔길(1947), 나무위의 남작(1957),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 , 왜 고전을 읽는가
  • 옮긴이/출판사 : 이현경/민음사(2판4쇄 2011.5.27), 135쪽

이탈리아 작가인 이탈로칼비노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책블로그를 통해서였다.

몇몇 믿을만한(책에 관한) 블로거들의 책소개를 보고 선택했는데 작가와의 조우는 이렇게 들 불현듯 이루어진다.

책을 구입하고 바로 읽는 경우와 그렇지 않고 잠시 두었다가 읽는 경우 두가지가 있다.

나의 경우 대부분 후자에 속하는데 이는 마치 연인을 만나기 전에 어떤 기대나 설렘같은 마음의 준비를 하듯 그렇게 작가를 만나고 싶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책은 마치 연인처럼 처음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있다. 뒤로 갈수록 좋은 문장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첫문장에서 계속될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나는 어떤 작가에 몰입하면  그의 초기작품부터 모조리 구비해 두고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기에 그중 하나라도 구할수 없게되면 무언가 끊기는것 같아 책구입에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

이 책도 마찬가지로 거미집으로~만 빼고는 모두 구비한 후에 출간한 순서대로 읽기 시작한 첫번째 책이다.

이 책은 17세기 터키와의 전쟁에 참가했던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이 대포에 맞아 반쪼가리 인간으로 고향에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작가는 한 인간 속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냐에 따라 선한 사람으로, 악한사람으로 나타나게 된다. 반쪼가리 인간은 바로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즉 소외된, 억압받는 인간으로 말이다.

 

<본문속 밑줄>

남자들은 적을 만들어 놓고 그 적이 자신이 상상하던 모습과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16)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거야.

너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가지 모습이 될수 있지.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60)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걸 알게 될거야.(88)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109)

나는 완전한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5
앙드레 브르통 지음, 오생근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제목 : 나자(1928년 , 갈리마르 출판사) 

⊙저자 : 앙드레브르통(1896~1966) , 초현실주의 주창한 프랑스 시인, 작가, 평론가. 편집자, 화상 

⊙옮긴이 /출판사: 오생근/민음사 세계문학전집185 (2008. 9. 5 1판1쇄) /178쪽

⊙작품 : 땅의 빛, 연통관, 무모한 사랑, 길잃은 발걸음, 들판으로 가는 열쇠 등

나자, 나자...... 몇번이나 그녀의 이름을 되뇌여 불러본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되고도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한 책.

나를 객관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들, 모습들이 삶의 한계안에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수 밖에 없도록 선고받은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방황하는 영혼'인 '나자'의 자유로운 생각과 풍부한 상상력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워서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 동시에  강하면서도 약한 심성이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던가를 알게 되었을때 나를 슬프게 했다. 같은여자로서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나자'를 가장 잘 표현한 글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지나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달리 머리를 높이 쳐들고 걷는 모습이었다. 너무나 가냘픈 몸매라서 마치 휘청거리며 걷는 듯했다. 얼굴에는 알아차릴수 없는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금발에는 어울리지 않게 눈가를 아주 검게 칠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눈꺼풀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눈은 처음보았는데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 신비스럽고, 마치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였다.

'나자'는 허구적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인물을 다룬 소설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을때는 마치 암호문 같은 텍스트들이 많아서 매끄럽게 읽어나가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내가 수동적인 독서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이책을 처음부터 재독을 한것은 처음이다. 물론 처음 대하는 '초현실주의'의 난해함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작가의 말이 어렴풋이 알것도 같다.

작가도 이 책을 읽어가는데  '여닫이문'처럼 읽기를 원했다. 책에서 삶으로, 삶에서 책으로 이동하는 자유로운 소통이 되기를 바란것처럼 나또한 그렇게 자유롭게 생각하고자 했다.

사실 초현실주의에 대한 개념도 없는 내가 읽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지만 색다른 책이어서 나름 신선하고 어리둥절하기까지하다.

----------------------------------------------------------------- 

저 눈속에 스쳐가는 범상치 않은 빛은 무엇일까? 어떻게 저 눈속에는 어두운 고통의 빛과 밝은 자부심의 빛이 동시에 비칠수 있을까?(66)

사랑이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의 사랑만이-그러니까 불가사의하고, 있음직하지 않고, 유일한 것이고, 당황스러운 것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랑만이-이세상에서 기적을 이룰수 있는 것이다.(140)

나자, 인간으로서의 나자는 이제 아주 먼 곳에 있지만.. 물론 다른 사람들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가사의한 존재,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적어도 내 믿음이 바뀌지 않았을 불가사의, 그것과 함께 뿌리를 내리고 자란 이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이름은 계속 내귓가에서 울리고 있다.(154)

내게 유일하고도 실천적으로 확실한 영감을 주는 저 위대한 무의식의 생생한 목소리만이 언제까지나  나의 모든 자아를 좌지우지하기를 바란다.(159)

아름다움은 리용역에서 끓임없이 덜컹거리면서, 내가 알기로는 출발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출발하지 않을 기차와 같습니다. 역동적이지도, 정태적이지도 않은 아름다움, 지진계처럼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 침묵의 절대적인 힘...조간신문은 어제나 나의 근황을 충분히 잘 알려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발작적인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아닐 것이다(164-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