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당나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7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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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에 이어 두번재 이어서 읽고 싶은 작품 그의 독특한 몽환적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에 등불을 밝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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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강 일공일삼 12
앙리 보스코 글, 장 올리비에 에롱 그림, 김화영 옮김 / 비룡소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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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생트>에 이어 앙리보스코의 전작을 읽고 싶어 또다른 작품을 어렵게 찾아내어 읽을수 있게 돠어 기쁘다 이아생트의 아름다운 문장들,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조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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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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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외로운 산책자의 이야기

최근 읽었던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였다는 것이 더욱 흥미를 갖게 해주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숨은 작가의 위대한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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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의 수도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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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본명: 마리앙리 벨) : 1783~1842. 프랑스 ​

-옮긴이 : 원윤수, 임미경

-민음사 1권(379쪽), 2권(387쪽)

 

오래전 스탕달의 작품<적과 흑>을 읽은 이후로 두번째로 읽게된 이 작품은 어느날 이탈로칼비뇨의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칼비뇨가 이 작품을 두고 평생 손에서 놓지 않는 책이라는 데 호기심이 이끌려 읽던 책을 내려 놓고 책장에서 찾아내 읽게 되었다.

칼비뇨의 고전에 대한 아주 흥미진진한 평론은 그 책을 찾아 읽지 않으면 도무지 배겨날 방법이 없다. 다만 아쉽게도 국내 번역된 책들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발자크는 장장 72쪽에 달하는 헌사에서 "모든 면에서 완벽함이 돋보인다"라고 했으며, 앙드레지드는 '프랑스 문학의 최고봉' 이라는 찬사를 했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스탕달이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만년의 나이에 쓴 소설로써 믿을수 없게도 52일만에 구술로 받아적게 하여 쓴 책이다. 만년에 그의 꿈과 추억, 모든 열정, 욕망까지 모두 소설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은연중에 <적과흑>속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는 것이다. 쥘리앙과 파브리스의 공통점은 물불안가리는 열정을 가진 청년이라는 점과 연상의 여인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되지만 미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야 마는 것이다.

파브리스의 순수한 마음과 심지어 신중치 못한 행동마져도 사랑스럽게 만든다. 아마 이것이 파브리스의 매력인 도저히 사랑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순수함이다.

요즘처럼 세속적이고 영악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눈에는 어처구니 없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내게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감옥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다는 행복감에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 것과 후에 감옥을 탈출했다가 연인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 것은 그야말로 두손을 들게 만든다.

파브리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그의 고모인 산세베리나 백작부인을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그 시대의 권태외 세속적인 것에 대한 통쾌하면서도 명민하게 대응하는 면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인간적이며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이 내게는 더 인상깊었다. 그녀의 파브리스에 대한 비범한 사랑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자신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조카에게 보이는 애정은 너무도 애달프기까지하다. 결코 막장드라마같은 이야기와는 비교해서는 안된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옮긴이의 말을 빌면<행복에의 추구>이다. 그야말로 스탕달적인 작품의 특징을 보여주고있다.

스탕달은 '소설은 길을 따라 들고 다니는 거울이다 ' 라고 했듯이 그는 시대의 상황을 소설에 너무도 잘 나타내어 마치 그 시대의 단막극을 보듯이 작품 속에서 함께 따라다니게 만든다.

 

<밑줄>

이탈리아인들이란 성급한 상상이 낳는 의혹이라든가 어리석은 생각따위에 빠지면 우리들 프랑스인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워하는 법이지만, 대신 그들의 즐거움은 더 크고 오래 지속된다(1-119)

파브리스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대하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감동해서 그때까지 마음에 드리우고 있던 그 따갑고 신랄한 근심마져 잊어버리고 만다.(1-229)

 

이성적 인간이라면 위험에 직면했을때 기지를 써서, 말하자면 자기 능력이상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공상적인 사람은 그럴경우 대담하긴 해도 대부분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다.(1-283)

 

사랑이란 얼마나 치명적인 정열인가! 그런데도 세상의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사랑에 대해 마치 행복의 원천인양 말하곤 하지! 사람들은 나이든 여인들을 동정하지 그네들은 사랑을 느낄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불러 일으킬수도 없다고 하면서...(2-25)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났어요 나는 서른 일곱이 된 여자에요. 늙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이지요. 벌써부터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주는 갖가지 의기소침한 심정을 맛보고 있는걸요. 

아마도 곧 무덤으로 갈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은 그 순간이 두렵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순간이 기다려지는 듯해요.(2-47)

 

사랑에 빠진 남자와 죄수는 어떤 장애가 있다 해도 성공하게 되어 있다(2-108)

 

진정한 정열로부터 나온 행동이라면,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 금전에 대한 비굴한 관심이나 저속한 생각들로 둘러싸인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생활가운데서도 언제나 그 결실을 얻게 된다.(2-210)

 

마흔살의 여자는 젊은시절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의 추억 속에서나 한가닥 의미를 가질수 있을까 그 외는 아무것도 아니야.(2-226)

 

문학작품 속에 끼워넣은 정치 이야기는 음악회 도중에 울린 한방의 총성처럼 조화를 깨는 거칠기 짝이 없는 것이다.(2-227)

 

작은 나라의 절대군주들이란 아무리 그 자신을 선하다 할지라도 변덕스럽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유행이고, 그 유일한 이유는 바로 <권태>라는 병이지.(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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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의 아들
에셀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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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처음엔 제목만 보고는 언뜻 선택이 망설여 졌는데 . 무엇보다 극작가 버나드쇼가 희곡으로 각색해서 지금까지 영화, 연극, 발, 오페라, 뮤지컬 등 공연작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소개되어 있어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외에 로렌스잭 런던 등이 당대 최고의 걸작이라고 격찬한 소설이라고 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소설속 역사적 배경은 1830~40년대 이탈리아 정치적 비밀결사 <청년이탈리아당>의 활동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아서는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자라지만 자신의 출생이 추기경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게 된다그리고 동지의 배신으로 인해 사랑하는사람으로부터 오해를 받게되자  모든걸 뒤로한채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다른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남미를 거쳐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런 과정에서 겪는 힘겨운 여정은 너무도 참혹할 정도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히게 된다.

기독교신자들의 위선적 행위에서 갯플라이는 종교라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종교의 갈등과 정치적 권력싸움은 여전하니 시대와 장소만 다를뿐 비슷한 공감대가 생긴다.

보이지 않는 음모와 계략 등 무고한 시민과 서민들을 우롱하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규율을 정하고 틀에 가두어 사고의 틀을 옭아매는 현시대의 종교상이 너무도 유사하다.

종교가 먼저인가?. 인간의 근본적 사랑이 우선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묘사가 아주 세밀하여 마치 무대에 올려진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갯플라이의 정체를 이제는 알아보겠지 하면서 조마조마해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갯플라이는 겉으로는 공격적이고 괴팍한 모습으로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과 여린 감성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모습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의하는지 반성해 볼일이다.

소설 속에서 아서는 기독교와 성직자의 위선에 대해 반발하지만 그 내면에는  그만큼 애정이 담겨 있음을 엿볼수 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몬타넬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음을 나타내 보인다.

몬타넬리도 마지막에는 인간앞에 종교란 있을수 없음을 깨닫고 드디어 자신도 죽음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본성인 사랑은 어떠한 종교도 그 것을 배제하고 존재할수 없음을 보여준다.

맹신적인 잘못된 종교의식이 얼마나 인간을 옭아매고 감옥처럼 가두는지 진정한 자유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수 있게 됨을 저자는 우리에게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고 나서 쇼스타코비치의 <갯플라이 로망스>를  홍성은의 첼로로 들어보니 깊어가는 가을밤에 들으니 왠지 쓸쓸하면서도 아련함에 젖어들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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