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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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셀우엘벡 장편소설(2010공쿠르상 수상)

▶장소미 옮김/문학동네(초판 2011.9.9), 518쪽

▶작품 : 행복의 추구, 투쟁의 의미, 투쟁영역의 확장(1994), 소립자(1998), 플랫폼(2001), 어느섬의 가능성(2005). 공공의 적들(2010) 등

 

<소립자>의 작가로 많이 알려진 미셸우엘벡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책은 첫장편소설인 <투쟁영역의 확장>이었다. 어떤 작가를 선택하고자 할때 나는 작가의 첫작품을 먼저 읽어보고는 결정하곤 한다.

바로 얼마전 이 작가의  공쿠르상 소식을 듣고는 구해 놓았다.

다른 작품을 읽지 않고 바로 최근작을 읽어서인가 뭐랄까 첫 작품때 받았던 충격적인 표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젊은 객기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다소 단련되고 절제된 듯한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독특함을 군데군데서 발견할수 있다.

등장인물들중 주인공 제드, 아지, 작가 우엘벡 등을 통해서 자신의 모형을 대신하고 있다.

조금 특이할 만한 것은 작품 속에 자신이 작가로 등장하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사진작가이자 화가인 주인공 제드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그려냄으로써 보여준다.

화가였다가 지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되면서 사진 작가로 크게 성공하자 돌연 회화로 전환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예술 작업의 변화는 그가 바라본 대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따라 변화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밑줄>

극심한 절망의 타성에 젖어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 그 어두운 길로 접어든 사람이 우엘벡의 존재에 주목했다면 그건 분명 이 작가에게 뭔가 있다는 것이었다.(26)

 

생애 두번째로 커다란 미학적 발견을 했다. 지도의 아름다움에 전율이 일었다.

미슐랭 지도만큼이나 훌륭하고 감동적이고 의미있는 물건은 본 적이 없었다. 복잡하고 아름다웠으며, 완전무결한 명료함을 지니고 있었다. 각각의 마을과 촌락들에서 수십 수백여 생명과 영혼들의 맥박소리와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58-59)

 

사랑이 초기단계일때, 사람들은 대개 앞으로 닥칠 힘든 날들과 나아가 이별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간직하겠다는 희망으로 여행지의 모든것에 감탄하기 일쑤다.(110)

 

사교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정점을 찍는 두시기, 즉 크리스마스 이브와 한해의 마지막날밤 사이의 일주일은 한없이 길다. 이 시간은 아득하기만 한 죽은 시간이다.(276)

 

노화는,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노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오히려 급작스런 추락을 겪을 때마다 형성되는 몇단계가 쌓이면서 특정지어진다. 퇴화는 우선 내부조직부터 은밀하게 파고들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밖으로 터져나온다.(289)

 

삶은 때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만, 너무 비겁하거나 우유부단해서 그 기회를 덥석 움켜잡지 못하면 이내 거두어 가버린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순간이 대신 인생에 정말 단 한번, 꼭 한번 뿐이다.(301)

 

늘 메모하고 문장들을 늘어놓아볼 수는 있지만 , 소설을 쓰려면 이 모든 것이 촘촘해지고 논박의 여지가 없게될 때까지, 필연이라는 진정한 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소설은 절대 소설가 마음대로 쓸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책은 굳기를 스스로 결정하는 콘크리트 블록과도 같아서, 작가가 할수 있는 일이란 그저 거기 그렇게 존재하며 무기력한 번민 속에서 책이 저절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우엘벡'(305)

 

개는 일종의 어린아이이다. 보다 순종적이고 유순하고, 평생을 분별력이 있는 나이에 머무르다가, 대게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어린아이. 개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불가피하게 우리 곁을 떠날수 밖에 없는 존재를 사랑하길 받아들이는 것이다.(361)

 

자줏빛과  선홍빛 사이에서 망설이는 듯한 색깔의 구름 떼가 갈가리 찢긴 기이한 형태로 석양을 향해 떠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상이 어느 정도는 아름답다는 것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저녁이었다.(411)

 

부는 유복함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어린시절부터 유복함에 단련되어 잇는 사람들만을 행복하게 한다. 어려웠던 인생 초창기를 겪은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부를 손에 쥐면, 그를 엄습하는 첫번째 감정은 공포다. 결국은 부에 완전히 잠식 당하기에 이른다.(471)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타인을 통해 자신의 노화를 인식한다, 혼자서는 늘 영원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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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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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날들을 모비딕을 잡기 위한 격렬하고 슬프고 고독한 긴 항해가 끝났다.

안개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 공포와 외경심을 불러 일으키는 거대한 어떤 대상을 향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맞서는 애이해브선장과 선원들의 처절함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다.

보르헤스가 추천하기도 했던 <모비딕>은 <리어왕>, <폭풍의 언덕>에 이은 영문학 3대비극의 하나로 어릴적 동화로 읽은후 완역본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읽게 되었다.

올해초 이책을 읽기 시작해서 지난 달에야 완독을 했는데 분량도 방대하지만 대서사적인 내용과 고래와 해양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이렇게 내 마음을 송두리째 삼킨 책이라서 아직까지도 그 여운에서 빠져 나오는 데는 아마도 저 깊은 심연에서 올라오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독자는 정말이지 좋은 책과의 조우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케 한 책이다.

책 속 인물들중 에이헤브선장은 카리스마적이면서도 폭군적인 성격인  그는 그 이면에 고독하면서도 쓸쓸한 어떤 모습을 갖고 있기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든다.

또 한 사람은 주인공 이슈메일의 친구인 퀴케그 야만인 임에도 어떤 설명할수 없는 매력과 신뢰감을 갖게해서 그에 대한 깊은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

 

<밑줄>

실컷 웃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보기 물게 좋은 일이다. 그래서 더욱 유감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유쾌한 웃음거리로 제공한다면, 그 사람이 부끄러워서 꽁무니를 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게 해 주어라 자신에 대해 실컷 웃을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을게 분명하다.(63)

 

모든 고통의 우현 쪽에는 확실한 기쁨이 있습니다. 고통의 바닥이 깊은 것보다도 그 기쁨의 꼭대기가 더 높습니다. 기쁨은 이 지상의 거만한 신들과 선장들을 거역하고 그 자신의 확고한 자아를 내세우는 자에게 있습니다.(86)

 

그(퀴케그)는 야만인이었고 얼굴은 보기 흉하게 손상되어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결코 불쾌하다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은 영혼을 감출수 없다. 괴상하고 무시무시한 문신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순박하고 정직한 마음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았고, 크고 깊은 눈 , 불타는  듯한 검고 대담한 눈 속에는 수많은 악귀와도 맞설수 있는 기백이 드러나 있는것 같았다. 그 이교도의 태도에는 어딘지 모르게 고결한 데가 있었고, 그의 거친 무례함조차 그 고결함을 손상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굽실거리거나 빚을 진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87)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 두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번째가 끝나면 세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99)

 

잘 웃는 나쁜 선장보다는 침울하지만 좋은 선장과 항해하는 편이 나아. 에이헤브는 고통에 시달려 망가졌을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네(123)

 

자네는 좀더 낮은 층을 볼 필요가 있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판지로 만든 가면일 뿐이야. 하지만 특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정한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 그 엉터리 같은 가면 뒤에서 뭔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는, 그러나 합리적인 무엇이 얼굴을 내미는 법이야, 공격하려면 우선 그 가면을 뚫어야 해(217)

 

내면에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가진 인간은 진실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거나 아직 인간이 다 되지 않았거나 둘중 하나다.(512)

 

불행과 god복사이에는 불평등이 존재하는 rjt같다. 지상 최고의 행복도 그 속에 무의미한 찌꺼기를 감추고 있지만, 모든 슬픔의 밑바닥에는 신비로운 의미가 숨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대천사같은 장려함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555)

 

큰 바보는 항상 작은 바보를 나무라는 법이지. 인간은 불멸의 영혼들이 체에 거르는 존재로군요(619)

 

내 인생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황량한 고독이었어. 선장이라는 직책의 배타성은 돌로 지은 성벽도시나 마찬가지야. 성밖의 푸른 들판에서 동정심이 들어올 여지는 거의 없어. 오오, 그 지루함, 그 무거움, 고독한 지휘관은 기니해안의 노예와 다를게 없어!(643)

 

우리 인간은 저기있는 양묘기처럼 세상에서 빙글빙글 돌려지고, 운명은 그 기계를 돌리는 지레라네.(646)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속에 있다. 모든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밷어주마.(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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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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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국내 초역, 숨은 걸작)

조지오웰장편소설(이 한중 옮김)/한겨레 출판(초판1쇄 2011.4.11), 366쪽

 

 

내가 조지오웰의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1984>,<동물농장>뿐이었다.

그러다 재작년에 오웰의 새 작품 르포<위건부두로 가는길>, 에세이집<나는 왜 쓰는가>가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고 호기심에 읽게 되었는데 그 에세이중 <스파이크>,<나는 왜 쓰는가>,<교수형> 등을 읽으면서 나의 관심은 급속도로 커질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웰도 전작주의작가로 내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한편 요즘처럼 출판계가 어렵다며 말들하는데 사실 정말로 읽을 만한 책들은 소수이고, 그것도 잠시 나왔다가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묻혀버리고 마는데 비해 사람들의 값싼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조지오웰의 숨은 걸작들을 이렇게 찾아내어 번역한 '이한중'씨에게 나는 독자로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소설이 특별한 것 한가지는 오웰의 문학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1936년 이후에 쓴 첫 소설이자, <동물농장>을 내놓기 전에 쓴 마지막 소설이라는 것이다.

오웰은 1936년 이후로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작업에 힘써왔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소설은 뚱보이며 보험회사 세일즈맨인 중년의 '패터'는 전형적인 가장으로 발랄하지만 쉽게 체념하는 성격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대부분 그렇듯이 앞만보고 달려온 자신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 보고 탈피하고자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우연히 경마에서 돈을 딴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서 그 돈을 쓰는 궁리를 하고 20년이 넘도록 못가본 고향으로 갈 계획을 세우면서 그의 오뒷세이아는 시작된다.

어린시절에 살았던 집과 젊은 시절의 연인 등을 만날 꿈을 꾸며 떠나게 되는 여정등을 그린 것이다.

이 책에도 오웰 특유의 심각한 얘기를 코믹하게 이끌어내는 유머와 독설가득한 통찰을 보면서 독백처럼 이어지는 이야기가 자칫 지루해지는 것을 되돌려 놓곤 한다.

그는 상실에 대한 아픔을 표현하면서도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도록 환기시키는 놀라운 재주를 부린다.

누구에게나 되돌아 가고픈 그런 오뒷세이아가 있다.

그것이 실제하든 존재하지 않든 마음 속에 간직한 자기만의 숨쉴 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숨쉴 공간을 방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밑줄>

개인으로서의 나라는 존재가 꽤 중요해 보이는 대부분의 순간, 나는 늙은 개에게도 아직 누릴 생이 있으며 좋은 때가 많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산다. (18)

 

모든 뜽뚱한 남자들 속에 야윈 남자가 있다는 생각을 혹시나 해보신 적이 있는지? 모든 돌덩이 안에 조각상이 있다고 하듯 말이다.(35)

 

어떤 생각을 하든 , 이 세상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항상 100만명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나뿐이라고 느꼈다. 우리 모두 불타는 갑판에 서 있는데 나만 불이 난 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쳐가는 인파를 보니 모두 넋나간 얼굴들이었다.  11월의 칠면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일이 다가올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 말이다 . 나 혼자만 눈에 엑스레이라도 달려 있어서 해골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43)

 

과거는 참 묘한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과거는 실체를 띠지 않는다.  그러다 어떤 우연한 광경이나 소리나 냄새, 특히 냄새가 우리를 자극하게 되는데, 그럴때는 과거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과거 '속'에 들어가 있게 되는 것이다.(46)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지 못한다.

우리를 끊임없이 이런저런 백치같은 짓만 하도록 내모는 악마가 우리안에 있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중요한 일 말고는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당신이 살아오면서 그 일을 하기 위해 실제로 보낸 시간이 당신 인생에서 차지하는 몫을 계산해보라. 그러고 나서 면도하고, 버스로 여기저기 다니고, 기차 환승역에서 기다리고, 지저분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신문 읽느라 보낸 시간을 계산해보라.(118~119)

 

아무튼 '좋은책'이란 아무도 읽을 생각이 없는 책이었다.

자신이 도달한 정신 수준에 딱 맞는 책을 발견하게 되고, 너무 잘 맞아서 마치 자신을 위해 쓴 책이 아닌가 싶기만 한 경우가 이따금 있다(173)

 

한여자와 15년을 살다보면, 그녀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녀는 주변 질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불경스러운 소리지만 해나 달에 대해서도 못마땅한 점을 발견할수 있을텐데, 그렇다고 해나 달을 갈아치우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는가? (198)

 

내가 뚱뚱해진건 너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대포알에 맞아 그 자리에 박혀버린 느낌이었다. 어떤 기분인지 아실것이다. 어느날 밤 아직 꽤 젊다고 느끼며 여자 생각같은걸 하다가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깨어보니 자신이 죽는 날까지 아이들 부츠를 사주기 위해 죽어라 일만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이먹은 뚱보일 뿐임을 철저히 자각하게 되는 기분 말이다.(202)

 

숨 쉬러 나간다는것!  커다란 바다거북이 열심히 사지를 저어 수면으로 올라가 코를 쑥 내밀고 숨을 한껏 들이마신 다음, 해초와 문어들이 있는 물밑으로 다시 내려 오듯 말이다.

우리는 모두 쓰레기통 밑바닥에서 질식할 듯 지내고 있는데, 나는 밖으로 나갈 길을 찾은 것이다.(241)

 

옛시절은 끝나 버렸고, 그걸 다시 찾으러 다닌다는건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내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감춰져 있다가 마침내 찾아보니 사라져 버린 존재였다.

나는 내 꿈에다 수류탄을 투척한 것이었고, 공군이 따라와 500파운드짜리 TNT를 떨어뜨린 것이었다.(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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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풍경 펭귄클래식 40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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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엄지영 옮김)

· 출판사 : 퓅귄클래식코리아(1판6쇄 2010.4.28) , 282쪽

 

이 책을 몇달전에 사서 책꽂이에 꽂아 놓은채 그냥 잊어버렸나보다.

어느날 책장을 둘러보다 이책을 발견하여 그냥 서문이라도 읽어보자 라며 읽던중 첫문장에서 그만 이 책을 덮을수 없으리라는 예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어떤 알수없는 무언가가 나를 압도하듯 끝없이 빠져들게 만들것이라는 불안감같은 것이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책장에서 두권의 책을 발견하다니 아마 구입한줄 모르고 또 구매한 것이리라.

이런 일이 요즘 종종 일어나는 현상중의 하나인데 그래서 지인들에게 선물할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저자인 로르카는 피아노와 작곡, 회화, 시와 극작을 종횡무진하여 예술성을 발휘한 스페인의 천재시인으로 샤갈, 네루다, 보르헤스 등 당대 최고의 지성 및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이 책은 로르카의 나이 20살에 발표한 첫작품이자 유일한 산문집으로, 스페인남부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지방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쓴 인상을 서정적인 산문으로 펴내어 마치 쓸쓸한 풍경을 보듯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안달루시아의 달, 붉게 물든 노을, 아련히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 폐허로 변한 수도원의 조각상, 안개 속에 희미한 사물들....... 나도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안개속에 갖혀버린채 길을 잃고 말았다.

단 , 이 책을 읽을때 주의할 것은 문장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비극적이기까지 하므로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대부분 서문이 너무 지루하면 읽기 힘든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서문은 나를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붙들어 놓고 말았다.

나를 압도한 서문의 첫문장은 바로 이러했다.

 

"독자 제위. 여러분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가 마음속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가는지 보게 될 것이다. ......

환상은 이 세상에 영혼의 불을 지펴 작은 것들을 크게, 추한 것들을 고결하게 만든다. 우리 영혼 속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

커튼이 올라가고 있다."

 

<본문속 밑줄>

 

여행의 추억이란 지나갔던 여정을 마음속에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억 속에서는 모든 풍경이 보다 쓸쓸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모든 것이 꿈 속의 세계처럼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여정을 회상할 때마다 우리는 부드럽고 쓸쓸한 빛의 애무를 받으며 저 높은 곳으로의 비상을 꿈꾼다.(17)

 

노을로 물든 하늘은 단조롭지만 웅장한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든 세상이 근엄한 망토를 펼치자 먼 솔밭에서 우수가 샘솟았다. 저녁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신비로운 기분이 스며들었다.(31)

 

고독은 정신을 다듬는 위대한 조각가이다.(42)

 

시간은 이름, 아니 최소한의 존재 흔적마져 지워버린다. 시간은 인간의 모든 허영심과 헛된 욕망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열정중에 가장 추한 것은 분명 허영심이리라.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들을 죄다 스스로의 궤짝 속에 가둬버린다. 허영심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없애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이와 같은 엄청난 격정 또한, 모두 지고한 아름다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109)

 

바람은 골목 모퉁이에 모여 두런거리고 중천에 걸린 창백한 달은 힘없이 빛을 뚝뚝 흘린다. ......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들에서조차 지금은 버림받은 듯한 비극적인 감정이 스며 나오고 있다.(116)

 

그라나다의 종소리 교향곡! 세상에 이보다 더 웅장하고 , 이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음악이 있을까?

그라나다의 밤 풍경엔 신비로운 소리의 빛이 흐른다. 달이 뜬 밤에는 감각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드는 소리때문에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쓸쓸한 기분을 자아내는 소리는 바로 황혼으로 물드는 하늘에서 시작된다.(153)

 

은은하게 흐르는 달빛에 온 세상이 최면에 걸린듯 하다.

달빛은 세상 만물에 입을 맞추고 나뭇가지들을 부드럽게 감싸안음으로써, 증오심을 사라지게 할 뿐 아니라 세상을 더 확장하고 들판 깊숙한 곳을 바다로 변화시킨다.(156)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고 홀로 남은 정원은 과거의 모든 시간이 묻힌 묘지다.(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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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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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에 대해 알고 있는 나의 짧은 역사지식으로는 아버지가 뒤주에 가두어 죽였던 세자라는 것외엔 그 이유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 우리의 주입식 교육의 폐단인 전혀 고민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역사는 무조건 외우야하는 이해와 사고를 가지지 못한 교육의 결과의 한 예이다.

 <사도세자의 고백>의 개정판인 들어가는 글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인문학뿐만 아니라 학계의 한계를 보았다.

자신이 시각과 주장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시각은 권력이라는 힘으로 배제하고 짓밟아버리고 아예 싹까지 잘라 버리는 그런 모습들을 보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내용도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아들을 죽이는 지경까지 이르는 것에서 그만큼 기득권의 세력은 무섭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꾀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에서 별다른 구분이 가지 않는다.

지금도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철새들의 대이동이며 보복정치를 하고 있는 요즘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한중록>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배웠다는 데에 배신감마져 들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이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잇는 것을 보면 지금의 현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수 없는 정권의 속임수도 미화해서 기록될 것임을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죽이고 보복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을 잡은 쪽에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굴레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사도세자는  죽어서 까지도 자신의 부인에 의해 또 한번 저주와 조소를 받은 너무도 불운한 세자중의 한명이다.

정신병자라는 오명까지 쓴 그는 죽어서도 한을 풀고자 했을 터이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애쓴  저자 이덕일의 노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더이상 가해자에 의한 거짓 역사를 후세들에게 전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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