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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풍경 ㅣ 펭귄클래식 40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 저자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엄지영 옮김)
· 출판사 : 퓅귄클래식코리아(1판6쇄 2010.4.28) , 282쪽
이 책을 몇달전에 사서 책꽂이에 꽂아 놓은채 그냥 잊어버렸나보다.
어느날 책장을 둘러보다 이책을 발견하여 그냥 서문이라도 읽어보자 라며 읽던중 첫문장에서 그만 이 책을 덮을수 없으리라는 예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어떤 알수없는 무언가가 나를 압도하듯 끝없이 빠져들게 만들것이라는 불안감같은 것이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책장에서 두권의 책을 발견하다니 아마 구입한줄 모르고 또 구매한 것이리라.
이런 일이 요즘 종종 일어나는 현상중의 하나인데 그래서 지인들에게 선물할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저자인 로르카는 피아노와 작곡, 회화, 시와 극작을 종횡무진하여 예술성을 발휘한 스페인의 천재시인으로 샤갈, 네루다, 보르헤스 등 당대 최고의 지성 및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이 책은 로르카의 나이 20살에 발표한 첫작품이자 유일한 산문집으로, 스페인남부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지방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쓴 인상을 서정적인 산문으로 펴내어 마치 쓸쓸한 풍경을 보듯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안달루시아의 달, 붉게 물든 노을, 아련히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 폐허로 변한 수도원의 조각상, 안개 속에 희미한 사물들....... 나도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안개속에 갖혀버린채 길을 잃고 말았다.
단 , 이 책을 읽을때 주의할 것은 문장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비극적이기까지 하므로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대부분 서문이 너무 지루하면 읽기 힘든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서문은 나를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붙들어 놓고 말았다.
나를 압도한 서문의 첫문장은 바로 이러했다.
"독자 제위. 여러분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가 마음속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가는지 보게 될 것이다. ......
환상은 이 세상에 영혼의 불을 지펴 작은 것들을 크게, 추한 것들을 고결하게 만든다. 우리 영혼 속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
커튼이 올라가고 있다."
<본문속 밑줄>
여행의 추억이란 지나갔던 여정을 마음속에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억 속에서는 모든 풍경이 보다 쓸쓸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모든 것이 꿈 속의 세계처럼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여정을 회상할 때마다 우리는 부드럽고 쓸쓸한 빛의 애무를 받으며 저 높은 곳으로의 비상을 꿈꾼다.(17)
노을로 물든 하늘은 단조롭지만 웅장한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든 세상이 근엄한 망토를 펼치자 먼 솔밭에서 우수가 샘솟았다. 저녁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신비로운 기분이 스며들었다.(31)
고독은 정신을 다듬는 위대한 조각가이다.(42)
시간은 이름, 아니 최소한의 존재 흔적마져 지워버린다. 시간은 인간의 모든 허영심과 헛된 욕망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열정중에 가장 추한 것은 분명 허영심이리라.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들을 죄다 스스로의 궤짝 속에 가둬버린다. 허영심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없애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이와 같은 엄청난 격정 또한, 모두 지고한 아름다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109)
바람은 골목 모퉁이에 모여 두런거리고 중천에 걸린 창백한 달은 힘없이 빛을 뚝뚝 흘린다. ......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들에서조차 지금은 버림받은 듯한 비극적인 감정이 스며 나오고 있다.(116)
그라나다의 종소리 교향곡! 세상에 이보다 더 웅장하고 , 이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음악이 있을까?
그라나다의 밤 풍경엔 신비로운 소리의 빛이 흐른다. 달이 뜬 밤에는 감각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드는 소리때문에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쓸쓸한 기분을 자아내는 소리는 바로 황혼으로 물드는 하늘에서 시작된다.(153)
은은하게 흐르는 달빛에 온 세상이 최면에 걸린듯 하다.
달빛은 세상 만물에 입을 맞추고 나뭇가지들을 부드럽게 감싸안음으로써, 증오심을 사라지게 할 뿐 아니라 세상을 더 확장하고 들판 깊숙한 곳을 바다로 변화시킨다.(156)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고 홀로 남은 정원은 과거의 모든 시간이 묻힌 묘지다.(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