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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셀우엘벡 장편소설(2010공쿠르상 수상)
▶장소미 옮김/문학동네(초판 2011.9.9), 518쪽
▶작품 : 행복의 추구, 투쟁의 의미, 투쟁영역의 확장(1994), 소립자(1998), 플랫폼(2001), 어느섬의 가능성(2005). 공공의 적들(2010) 등
<소립자>의 작가로 많이 알려진 미셸우엘벡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책은 첫장편소설인 <투쟁영역의 확장>이었다. 어떤 작가를 선택하고자 할때 나는 작가의 첫작품을 먼저 읽어보고는 결정하곤 한다.
바로 얼마전 이 작가의 공쿠르상 소식을 듣고는 구해 놓았다.
다른 작품을 읽지 않고 바로 최근작을 읽어서인가 뭐랄까 첫 작품때 받았던 충격적인 표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젊은 객기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다소 단련되고 절제된 듯한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독특함을 군데군데서 발견할수 있다.
등장인물들중 주인공 제드, 아버지, 작가 우엘벡 등을 통해서 자신의 모형을 대신하고 있다.
조금 특이할 만한 것은 작품 속에 자신이 작가로 등장하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사진작가이자 화가인 주인공 제드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그려냄으로써 보여준다.
화가였다가 지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되면서 사진 작가로 크게 성공하자 돌연 회화로 전환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예술 작업의 변화는 그가 바라본 대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따라 변화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밑줄>
극심한 절망의 타성에 젖어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 그 어두운 길로 접어든 사람이 우엘벡의 존재에 주목했다면 그건 분명 이 작가에게 뭔가 있다는 것이었다.(26)
생애 두번째로 커다란 미학적 발견을 했다. 지도의 아름다움에 전율이 일었다.
미슐랭 지도만큼이나 훌륭하고 감동적이고 의미있는 물건은 본 적이 없었다. 복잡하고 아름다웠으며, 완전무결한 명료함을 지니고 있었다. 각각의 마을과 촌락들에서 수십 수백여 생명과 영혼들의 맥박소리와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58-59)
사랑이 초기단계일때, 사람들은 대개 앞으로 닥칠 힘든 날들과 나아가 이별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간직하겠다는 희망으로 여행지의 모든것에 감탄하기 일쑤다.(110)
사교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정점을 찍는 두시기, 즉 크리스마스 이브와 한해의 마지막날밤 사이의 일주일은 한없이 길다. 이 시간은 아득하기만 한 죽은 시간이다.(276)
노화는,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노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오히려 급작스런 추락을 겪을 때마다 형성되는 몇단계가 쌓이면서 특정지어진다. 퇴화는 우선 내부조직부터 은밀하게 파고들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밖으로 터져나온다.(289)
삶은 때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만, 너무 비겁하거나 우유부단해서 그 기회를 덥석 움켜잡지 못하면 이내 거두어 가버린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순간이 대신 인생에 정말 단 한번, 꼭 한번 뿐이다.(301)
늘 메모하고 문장들을 늘어놓아볼 수는 있지만 , 소설을 쓰려면 이 모든 것이 촘촘해지고 논박의 여지가 없게될 때까지, 필연이라는 진정한 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소설은 절대 소설가 마음대로 쓸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책은 굳기를 스스로 결정하는 콘크리트 블록과도 같아서, 작가가 할수 있는 일이란 그저 거기 그렇게 존재하며 무기력한 번민 속에서 책이 저절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우엘벡'(305)
개는 일종의 어린아이이다. 보다 순종적이고 유순하고, 평생을 분별력이 있는 나이에 머무르다가, 대게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어린아이. 개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불가피하게 우리 곁을 떠날수 밖에 없는 존재를 사랑하길 받아들이는 것이다.(361)
자줏빛과 선홍빛 사이에서 망설이는 듯한 색깔의 구름 떼가 갈가리 찢긴 기이한 형태로 석양을 향해 떠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상이 어느 정도는 아름답다는 것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저녁이었다.(411)
부는 유복함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어린시절부터 유복함에 단련되어 잇는 사람들만을 행복하게 한다. 어려웠던 인생 초창기를 겪은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부를 손에 쥐면, 그를 엄습하는 첫번째 감정은 공포다. 결국은 부에 완전히 잠식 당하기에 이른다.(471)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타인을 통해 자신의 노화를 인식한다, 혼자서는 늘 영원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