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전집 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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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란쿤데라

◇ 옮긴이 : 백선희

◇ 출판사 : 민음사(1판1쇄 : 2011.11.25), 423쪽

 

 웃음과 망각을 테마로한 7편의 이야기를 얶은 책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책 전반에서 냉소적인 웃음과 망각에 따르는 회환이 공통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밀란쿤데라의 책들은 시간이 흘러도 기본맥락을 유지한채 식상하지 않아서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밑줄>

 

모든 민족이, 인간이 그러듯 역사를 다시썼다.  사람들은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외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심한 공허에 불과할 뿐이지만 과거는 삶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 얼굴이 우리를 약 올리고 화나게 하고 상처입혀,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거나 다시 그리고 싶어한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의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49)

 

아름다움이란 세월의간격을 뛰어넘고 서로 다른 두 연령이 만날때 갑자기 솟구치는 불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움이란 연대(年代)의 소멸이며, 시간에 대한 저항이라는 생각을 했다.(107~108)

 

나는 원이 지닌 마법적 의미를 깨달았다. 열에서 이탈했을 때는 아직 돌아갈수 있다. 열은 열린 조직이다. 하지만 원은 닫혀서, 떠나면 돌아갈 수 없다.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운석처럼 나는 원에서 떨어져 나왔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추락하고 있다. 맴돌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추락끝에 박살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들은 마음속에 읽어버린 원에 대한 수줍은 향수같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모든 것이 원을 그리고 도는 세상의 주민들이기 때문이다.(130)

 

"정말 나랑 똑같네.....나는 ..."이라는 문장은 맞장구를 치는 반응처럼 보이지만 그건 속임수다. 사실은 갑작스러운 폭력에 맞서는 갑작스러운 반항이며, 속박상태로부터 우리 귀를 해방하고 상대방의 귀를 강제로 차지하기 위한 노력이다.(152)

 

소설이란 인간의 착각의 결실이다.  타인을 이해할수 있다는 착각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172)

 

전반적 고립은 글쓰기 광증을 낳고, 일반화된 글쓰기 광증은 다시 고립을 심화한다. 보편적 글쓰기 광증시대에 책을 쓴다는 사실은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갖는다.

저마다 거울 담을 쌓듯이 자기 말을 담처럼 쌓아올려 바깥의 어떤 목소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177)

 

책을 쓰는 사람은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그 누구에게도 전부가 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쓰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무시당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신랄해져서 타인의 죽음을 바란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

제 말이 들리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은채 무심한 세계 속으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라도 고통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세계로 변하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인간이 작가로 깨어날 것이며 전 세계적인 난청과 몰이해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204~205) 

 

웃음은 우리를 세상에서 뿌리 뽑아 차가운 고독으로 집어던지는 폭발이지, 농담은 인간과 세상사이에 놓인 방책이네. 농담은 사랑과 시의 적이지.(270)

 

민족을 말살하려면 먼저 그들에게서 기억을 제거하려는 일부터 시작하지, 누군가가 그들의 책과 문화와 역사를 파괴하지. 그러고 나면 민족은 서서히 자신의 현재 모습과 과거 모습을 잊기 시작하지. 주변 세상은 그 민족을 더더욱 빨리 잊어가고 말이야.(297)

 

인간에게 더욱 견디기 힘든 일은 다른 무한도 알 수 없도록 정해졌다는 사실이다. 저마다 자신의 작품을 놓친다. 완벽을 쫓아 사물 내부로 들어가지만 우리는 결코 끝까지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308)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한 장소에 머무르며 기억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기억들은 넓은 세상에 흩어져 있기에 여행을 떠나 그 기억들을 피신처에서 끄집어내야 한다.(312)

 

아이들이 미래인 이유는 그들이 언젠가 어른이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점점 더 아이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고 유년기가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352)

 

인간 삶이 경계선 아주 가까이에서, 심지어 경계선과 맞닿은 곳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에 인간 삶의 모든 신비가 놓여 있었다.(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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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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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일기 /롤랄바르트(1915~1980)

- 김진영 옮김/ 출판사 : 이순(초판 2쇄 2012.12.20), p 280

- 작품 : 글쓰기의 영도(1953), 신화론(1957), 모드의 체계(1967), 텍스트의 즐거움(1973), 사랑의 단상(1977)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인 1977년 10.25일부터 1979년 9월 15일까지 약 2년간 쓴  쪽지들을 모아서 편집하여 엮은 것으로 나탈리 레제에 의해 출간되었다. 

바르트의 책은  처음 접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들을 읽어가는데 있어 어떤 열쇠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가 된다.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나는 바르트의 애도를 완전히 설명하기란 불가능 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대면하는 수많은 애도들은 과연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받아들여 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한다.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누군가가 계속 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참 많이 힘들어했던 지인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그녀에게 얼른 슬픔을 잊으라고 하지 않았고, 그녀의 슬픔 그 존재에 대해 자리를 내어주었다.

누군가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애도 그 자체를 인정해 주고, 애도를 충분히 하도록 방해하지 않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애도하는 사람에게 빨리 벗어나라면서 부추기는 것은 애도를 방해만 할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르트도 가장 참을수 없는 것이 누군가 자신의 애도를 방해하거너 거기서 빠져나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라고 했듯이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상태이다 .  

'슬픔'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멜랑콜리, 거기에 따르는 애도, 우울, 고통, 비참, 무거움, 에고이즘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상태라고 볼수 있다.

이토록 슬픔이 안개처럼 우리 주위를 모두 뒤덮히게 되었을때 가장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어머니에 대한 애도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수 없는 상태 그 자체이다.

 

<밑줄>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18)

 

슬픔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나의 슬픔은 그러니까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일 때문이 아니다. ....

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그곳은 다른 곳이다, '우리는 사랑했다"라는 사라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 (47)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50)

 

애도 : 그건(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상태다.(90)

 

우리가 역설적으로 일에 열중하고 일에 쫓기는 흥분상태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면 , 그때 가장 깊은 비애 속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  내면안에 머물기,  조용히 있기, 혼자 있기, 오히려 그때 슬픔은 덜 고통스러워진다.(110)

 

기록을 하는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것, "기념비"의 필연성(123)

 

문학, 그것은 내게 이런 것이다 : 푸루스트가 병에 대해서, 용기에 대해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의 무거운 마음에 대해서 또 그밖의 것들에 대해서 쓴 글들, 그리고 고통이 없이는, 진실에 숨이 막히지 않고는, 그 글들을 읽어낼수 없다는 것(187)

 

그녀의 죽음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 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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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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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스 푸엔테스(1928년 파나마시티 출생) 

·  작품 : 의지와 운명, 디아나, 고독한 사냥꾼 등

·  옮긴이 : 송상기

·  출판사 : 민음사(1판 2쇄 2010.7.19), 106쪽

 

보르헤스의 책을 읽다가 알게된 푸엔테스의 환상문학중 하나를 읽어보았다.

 "이 세상에 아비 없는 책, 고아인 책이 있는가?  어떤 책의 후손 아닌 책이?

인류의 문학적 상상력이 이룬 거대한 가계도에서 벗어난 단 한 페이지라도 있는가?

전통이 없는 창조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라는 작가가 말처럼 이야기의 재탄생, 새로운 창조가 되어 문학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다보니 주인공들과 챨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들이 오버랩되었다.

미스햐비샴과 콘슈엘로부인, 스텔라와 아우라 , 핍과 몬테로 등의 관계가 구조적으로 아주 유사하다.

그런 나의 추측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된건 뒷장에서 작가가 "나 자신을 읽고 쓰기에 관하여" 라는 장에서다.

'아우라' 는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가벼운 바람' 환영이자 제식을 행하는 대리인이다. 또한 예술작품이 지니는 범접할 수 없고 일회적인 신비한 분위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예술이 기계를 통해 복제되기 시작하면서 아우라를 상실해 가는 것을 푸엔테스는 아우라의 의미를 육화시켰다.

이 책은 고딕소설(공포와 로맨스를 조합한 문학)의 계보에 속하는 장르에 해당되기도 한다.

짧으면서도 아주 독특한 색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다.

 

<밑줄>

 

사람들은 자신이 외롭길 원하지요. 신성함에 다다르기 위해 고독이 필요하다면서 말이지요, 고독속에 있을때 유혹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모르면서 하는 말이에요(39)

 

이 알수 없는 우수, 횡격막을 누르는 압박감, 네 상상의 나래를 옭아매는 까닭모를 슬픔을 꿈속에서 온전히 느끼지.(51)

 

너는 이제 다시 시계를 보지 않을 거야. 그 쓸모없는 물건은 인간의 허영심에 맞게 조정되어 거짓시간을 재고, 지겹도록 긴 시간을 표시하는 바늘들로 진정한 시간, 즉 모욕적이고 치명적으로 흘러서 그 어떤 시계로도 잴수 없는 시간을 속이는 것에 불과해(59)

 

밤이야.  저 높은 유리창 너머로 먹구름이 속력을 내며 지나가. 구름은 자신을 증발시키려 하고 창백하게 웃는 달이 둥근 얼굴로 홀리는 불투명한 빛을 찢어 버려.  하지만 어두운 수증기가 내뿜는 빛이 약해지기 전에 달은 스스로를 드러낼거야.(59)

 

어제는 사라졌고 내일은 오지 않는다. 오늘은 끝이 없이 달아난다. 나는 나였고 나일 것이며  피곤한 채로 나는 남아 있다.(81)-케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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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부클래식 Boo Classics 9
장 자크 루소 지음, 김모세 옮김 / 부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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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지음 : 1712~1778  (김모세 옮김) 

· 출판사 : 부북스(초판1쇄 2010. 8. 5). 197쪽

 

루소가 생애 마지막 2년동안을 기록한 미완성 고백록이다.

루소의 <고백론>, <에밀>, <사회약론> 등의 저자로 잘 알려진 철학자이자 작가이면서 낭만주의작곡가이기도 한 그가 온갖 중상과 비방의 칼자국으로 너덜너덜해진 상처를 바라보면서 쓴 진지하고도 무거운 성찰의 내용들이다.

<고백록>이 동시대 사람들을 향한 글이라면 이 글은 먼 미래의 사람들을 향해 글을 남기는 것이다.

그시대에도 진정한 지성인은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진실을 말하고자 할때 주위사람들로 부터 비탄과 멸시와 조롱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당사자가 이니고는 알수가 없다.

타인들로부터 무의미한 비방과 오해에 대한 소문때문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에 대해 말해준다.

이 책은 루소의 몽상에 관한 무형식의 일기이며 말년에 자신에 대한 결산서이다.

그는 자신의 영혼과의 대화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고 그것만이 타인들이 빼앗아갈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는 '몽상'을 스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지나간 시간을 재생시킴으로써 박해하는 타인의 의도와는 반대로 사고의 매력을 맛보며, 다른 나이대의 나 자신과 함께 살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대단힌 정신의 소유자이다.

 

<밑줄>

고독과 명상의 시간들이야말로 하루중 내가 나자신으로 충만히 존재하며, 내 마음을 빼앗는 것이나 방해하는 것 없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자, 진실로 본성이 바라는 대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21)

 

신은 정의롭다. 그분은 내가 고통받기를 원한다, 그분은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사람들과 운명이 그들의 길을 가게 그냥 내버려두자. 군소리없이 고통을 겪는 법을 배우자. 결국에는 모든 것이 질서를 되찾을 것이며, 일찍 혹은 늦게 내차례가 돌아올 것이다(35~36)

 

만일 내가 불행하지 않다면 , 그들은 불행해진다. 나는 명상에 잠길때마다 늘 그들이 측은한 생각이 든다.(113)

 

나는 인간의 자유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118)

 

식물학은 나로 하여금. 학대와 증오, 멸시, 모욕 등  내 친절과 진실한 애정에 대해 그들이 내게 되돌려 주었던 온갖 고통을 잊게 해준다.  그것은 소박하고 선한 사람들이 사는 그 평화로운 곳들로 나를 데려다 준다. 식물학은 내 젊은 시절과 순결한 즐거움을 환기시켜 주며, 슬픈 운명 속에서 살고 있는 나를 이따금 행복에 젖게 해준다.(143)

 

나는 혼자 있을때만 나 자신이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의 노리개가 될 뿐이다.  그러면 나는 한적한 들판으로 가기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푸르른 녹음이 눈에 들어오면, 그때서야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다. 내가 고독을 사랑한다고 해서 놀랄 일이 뭐 있겠는가?  언제나 내게 미소짓는 자연과는 달리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적대감만 볼수 있을 뿐인데 말이다,(181)

 

내 마음 속에는 개방적이고 부드러운 감정을 양식 삼아 고독과 명상에 대한 취향이 생겨났다. 세상의 혼란과 소란은 그 감정을 수축시키고 숨 막히게 하지만, 고요와 평화는 그것을 북돋워주고 고양시킨다.(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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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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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1914~1980)/백선희 옮김

▷마음산책(1판1쇄, 2012.8.25), 287쪽

얼마전 책검색을 하다가 아주 반가운 책이 번역되어 나온걸 보고는 바로 구입해 읽었던 책이다.

로맹가리의 책은 거의 대부분 읽어왔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 <여인의 빛>,<연> 등도 하루 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손꼽아 기다려 본다.

아마 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나와 같은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로맹가리, 그는 이번에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만 그 이전의 작품에 비해서 조금은 절실한 그 무었이 부족한 듯 싶다.

아마 그의 대부분의 소설을 읽어왔기에 그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였는지 모른다.

이 책은 로맹가리가 적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후반부의 자전적인 내용도 가미되어 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수 있듯이 그가 진 세버그와 결혼해 살면서 미국에 있을때의 1960년대 후반부 미국의 인종주의 문제를 배경으로 씌었다.

로맹가리답게 그는 어느 한면만을 바라보지 않고 양면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다. 즉 그는 흑과백 어는 한편을 동조하지 않는다.

그의 <자기앞의 생>에서도 하밀할아버지가 모모에게 말하듯 "세상에는 완전한 검은것도, 완전한 흰것도 없다"고 했던 것처럼 선과 악의 양면을 말해주고 있다.

여전히 그의 책에는 하나의 공통점, 바로 인류에 대한 넓은 '사랑'이었다. 그는 절망을 이야기하지만 더이상 절망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 바로 그의 글이다.

<밑줄>

개와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한 짐승이 다른 짐승에게 우정을 보일 때 그 짐승의 판단은 대게 믿을 만하다는 것 말이다.(18)

점점 더 명백해지는 데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끔직한 진실이 자기 주위에서 커질때 사람들이 느끼는 거북함(23)

40년째 나는 변함없는 헛된 기대들을 내 안에 품은 채 세상을 떠돌고 있다. 나는 생리적으로 좌절이 불가능한 인간이다. 이 점이 모든 '아름다운 영혼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이토록 전투적으로 만든다. 그들에게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52~53)

내가 바꿀수 없고 해결할 수 없고 바로 잡을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난 그 문제를 없애버리지. 그걸 한권의 책 속에 배출해버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억눌린 것처럼 답답하지 않아. 그러곤 달아나 버리지.(64)

세버그와 살면서 나도 이런 순진함을 갖게 되었다. 질줄 알면서 이기는데 필요한 '순진함' 말이다. 인간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고 조롱당하는 편이 그들을 계속 믿고 신뢰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기 때문이다. 쓰라린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 성스러운 샘에 수세기 동안 악의에 찬 짐승들이 물을 먹으러 오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샘이 마르는 걸 보는 것보다는 낫다. 자기 자신을 잃는 것보다는 샘을 잃는 편이 덜 심각한 것이다.(77)

인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인간을 만날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장소는 개의 눈 속이다.(193)

울지 않는 것처럼 우는 여자들이 있다. 평온한 얼굴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런 얼굴은 모든 승악을, 수천년 된 체념을 상기시킨다.(238)

짐승을 사랑하는건 꽤나 끔직찍 일이다. 개 안에서 인간을 본 사람은 인간 안에서 개를 보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인간 혐오에, 절망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한다.(272)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삶에 쏟은 나의 과도한 사랑은 삶과의 관계를 매우 힘들게 만든다. 마치 도울수도, 바꿀수도, 떠날 수도 없는 여인을 사랑하기가 어렵듯이.(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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