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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마음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이유정 옮김(479쪽)
연민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으로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다.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는 것이다. 진정한 연민은 창조적인 연민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연민을 말한다. 마지막까지 함께 갈수 있는 사람만이, 비참한 최후까지 함께 갈수 있는 끈기있는 사람만이 남을 도울수 있다, 그것은 자신을 희생할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236)- 본문중에서
츠바이크의 단편소설 <모르는 여인의 편지>, <감정의 혼란>,<달밤의 뒷골목>을 접하면서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읽고 보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유일한 장편소설로서 1939년에 출판, 1946년과 1979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은 1차세계대전 발발직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접경지역이다.
여기에는 진정한 연민이 아닌 나약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한 연민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호프밀러소위와 부유한 실업가의 딸인 불구의 에디트, 그리고 진정한 연민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콘도어 박사.
이 작품도 역시 츠바이크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심리소설이다.
소설은 진정한 연민과 거짓연민을 호프밀러와 에디트의관계, 콘도어박사와 그의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서 대조적으로 제시해준다,
마치 그리스비극처럼 주인공의 잘못된 자그마한 행동이 운명의 수레바퀴가 되어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비극적 결말을 맞게된다.
<밑줄>
우리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면 10년이고 20년이고 곱씹으며 놀려대곤 했다. 어리석은 행동은 영원히 보존되고 이를 조롱하는 말들도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들은 절대로 잊는 법도 용서하는 법도 없다.(38)
온실 속에서 자라는 꽃이 더 무성하게 잘 자라는 것처럼 어듬 속에서 자라는 망상도 그러했다.(39)
새로운 것을 깨우칠 때마다, 황홀해지고, 어떤 감정에 빠지게되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바로 청춘이다. 연민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내 피는 더 따뜻하고 더 빨갛고 더 빠르고 더 격렬하게 만들어주는 독소가 혈액 속으로 침투한 것처럼 느껴졌다.(76)
모든 사물들이 파란 하늘에 날카로운 칼로 새겨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94)
분노는 사람을 심술궂게 만들기도 하지만 관찰력을 증대시키기도 한다.(118)
일을 반쯤하다가 말거나 말을 반쯤하다 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반쯤 하다 마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할수 있다,(132)
누구나 인생에서 한두번 겪을까 말까한 아주 힘든 시기에는 제아무리 교활한 자라 할지라도 마치 신 앞에서 벌거 벗겨진 것처럼 누군가에게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157)
똑같이 힘든 처지에 있던 이웃이 어느날 갑자기 날개를 달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는 극에 달하게 된다. 상전이 큰재산을 얻는 것은 용서할 지라도 같은 멍에를 짊어지고 있던 동료가 조금의 자유를 얻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보이다.(164)
연민이라는 것은 양날을 가졌다. 연민은 모르핀과 같다.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235)
버려지고 낙인 찍히고 추하고 쇠약한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적적이고 위험한 욕구를 품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어둡고 광적이고 절망적이며, 그 어떤 사랑도 그들의 미래도 희망도 없는 사랑보다 더 탐욕스럽고 더 간절할 수 없다.(273)
그리움이나 상심보다 더 쓰디쓴 고통은 원치 않는 사랑을 받는 고통, 그 집요한 열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이다. 스스로 불행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열정을 통제할 줄 알게 된다. 결국 자기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자신이 상대의 열정을 통제할수 없을 뿐더러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탐하는 상대의 욕망 앞에서는 그 의지조차 무력해지는 법이다,(282)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추진력은 바로 허영심이다. 특히 나약한 사람일수록 겉으로 용기있고 결단력 있어 보이는 행동을 취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325)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하면 나는 그저 한가지 일을 할 뿐입니다. 망설이지 않고 손을 쓰는거죠. 어떤 경우든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죠, 그 이외의 것은 모두 운에 맡겨야 합니다.(352)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는 도망칠수 있어도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도망칠수 없는 법이다.(354)
사랑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지를 알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그 은밀한 본성에 따라 언제나 무한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적당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366)
멸시받는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진정한 도음을 받을수 있다.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은 삶이 그들에게서 빼앗가간 것을 보상해주는 셈이다. 그들만이 진정한 방식으로,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줄 안다.(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