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정치사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미할 비란 외 엮음, 루스 던넬 외 지음, 조원희 옮김 / 사계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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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약 정복한 영토가 1,150,000㎢ 가 되고,  알렉산드르스 대왕은 정복한 영토가 약 3,480,000 ㎢가 된다고 한다. 

칭기스 칸은 정복한 영토가 무려 약 24,000,000㎢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역사 기록 책이 있듯이 몽골인에게 <몽골비사>라는 몽골의 숨겨진 역사를 정리한 책이 있다고 한다. 필수 과목으로 이것을 국민들이 외우듯이 배운다고 한다. 여기서도 몽골비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일화가 많다 보니 확증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 나오는 인물 쿠발라이 칸과 칭기스 칸, 뭉케, 우구데이가 주인공처럼 나온다. 



쿠발라이 칸은 뭉케 형이 칸이 되면서  제국 도처에 전해진 ‘통치 도구’의 대부분은 그들의 고유한 양식이 아니라 정주 지역 복속민의 양식을 차용한 형태였다. 칭기스 칸의 제국이 바야흐로 전 세계적 문명 교류의 불을 지핀 것이다. 

몽골의 급속한 팽창과 전방위적 통합은 구세계 전역에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지정학적, 종족적 대변혁을 일으켰다. 이 모든 충격과 그로 인한 변화로 인하여 세계는 중세에서 근세로 빠르게 이행했고,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또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여러 유목 정치 세력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몽골인들은 테무진이라는 지칭을 창조의 부산물이라 여기며 역사를 새기며 왔겨 때문에 여기서 태무진 이라는 호칭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태무진이란 칭기스 칸 이란 호칭이기도 하다. 

칭기스 칸은 인재 등용에 있어서 사회적 규범에 있어서 풍부한 등용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종교, 문화, 종족적인 것에 있어서 넓게 보았기 때문에 한족도 등용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권력 상승에는 불안정한 종족 간의 다툼도 있었다고 한다.


1권에서는 정치사가 주체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권력싸움이 남용하는 부분적인 게 많은 게 있으면서 통치력과 기술력으로 싸우는 전쟁의 모습을 많이 나온다. 쿠발라이 칸은 칭기스 칸이 이루지 못한 정복을 이루어 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2400만㎢를 이루는 데 있어서 몽골 제국을 이룬 인물이라 한다. 그래서 쿠발라이 칸을 일컬어 대칸이라고 일컫는다. 거기다가 고려 충렬왕의 딸과 혼인을 맞으며 친밀함을 유지하게 되면서 일본을 정복할 당시에 도움을 받았다 한다. 

대규모 원정을 시도하고 이를 지원하는 기반 시설을 건설하여 유라시아 전역에서 인력과 자원을 모을 수 있었다. 동시에 원정과 통치의 성공을 위해서 각 지역별 상황에 적응하고 그곳의 전문 지식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칸국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쇠퇴를 추적한다. 1251년 몽골 황실에서 일어난 뭉케의 쿠데타를 기점으로 제국의 서쪽에 성립된 이 나라는 이슬람 및 유럽 세계와 직접 경쟁하고 교류하며 몽골 제국의 세계 제국화를 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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