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 서울 이야기 - 우리가 몰랐던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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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경성/서울 이라는 이름으로 오기까지 여기의 역사는 격동의 역사가 다 담겨져 있다.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농업 사회이지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 소비율 또한 어느 나라 만만치 않게 도축을 하며 생산을 했다. 무려 일년에 40만마리를 도축을 했다.

소고기를 그렇게나 많이 먹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왕보다 관료들이 더 먹었다고 한다. 소고기로 얼마나 잘 사느냐가 판가름이 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혼례 때 1~2마리 잡아다가 잔치를 벌이곤 했었다. 법적으로 먹을 수 없지만 그러나 왕이 오히려 먹고 싶어 하기도 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몰라했던 한양의 역사를 읽어 볼 수 있다. 노비의 역사 또한 그 어느 역사보다 길다. 노비가 다른 양반, 평민의 인구수 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굿당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기도 한다. 병 때문에 굿을 하기도 하면서, 오히려 왕실에서 굿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왕의 전문 무당, 황후 전속무당이 있었다고 한다. 잘 알겠지만 관우상이 있다. 그것으로 신으로 모셔서 동묘에 있다.

당시에 지금처럼 하루배송으로 당일배송으로 올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보니 근방에 야채를 키워서 제공을 받았다고 한다. 청량리와 중화동은 미나리, 왕십리는 배추라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한양의 규모는 얼마나 되었을까? 40~42리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대략 16~18km 였다.

정도전이 처음 개국하려 당시에 이곳을 정한 이유가 바로 동서남북이 산으로 되어 있어서 방어에 용이 하면서 성곽의 조화가 아주 잘 이루어 질 것이라 하였다.

사진들은 대부분이 조선후기 시대 때가 사진 자료가 많아 사진은 도움자료가 되진 않지만 시대성의 이야기들이 간간히 나올 때마다 지역 이름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설명이 되어있다.

잠실은 뽕나무가 잘 자란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잠실은 당시에 섬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왕실목장이 있었는데 그곳을 살곶이벌 이라 하고, 남쪽을 지나가는 곳을 송파강이라 한다.


내시에 관련된 역사 또한 있다. 나도 몰랐던 역사가 내시에 관련된 것인데 첩, 양자가 있었다고 한다.

내시는 생식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양자를 들여서 대를 이었다. 거기에 궁녀들은 출궁인 경우가 나이들어서 병에 걸리거나 사망할 경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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