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역사 - 사랑과 권력의 5천 년
어거스틴 세지윅 지음, 김재용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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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역사적 인물 가운데 정말 아버지다운 아버지로는 누가 있을까. 아니 역사 인물이나 유명인사를 논하기 전에 잠시 감명 깊게 본 드라마 얘기부터 해볼까 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일명 '모자무싸')에는 가정다운 가정이나 부모다운 부모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유기와 방치 같은 모성애 결여의 문제가 제일 병적이지만, 부성애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 부성애의 아픔과 상실감을 상기시키는 인물로 시인 황진만의 처지가 나오는데, 딸의 행방을 십여 년 넘게 전혀 모른다는 점에서 역시 아비로서는 실격 수준이다.

흥미롭게도 황진만이 변은아에게 인생의 목적이 뭐냐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데, 변은아는 당차게 '힘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힌다.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들 많아"라는 황진만의 말대로,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 같은 아버지도 너무 많다. 역사상의 위인도 다르지 않다. 얼핏 내 머리를 스치는 '부성 제로'의 인물은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와 조선의 영조 임금이다. 루소는 낳는 아이마다 고아원 문앞에 갖다버렸고, 영조는 장성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 그런 루소가 얄궂게도 자녀교육의 멘토 역할을 꽤나 오랫동안 했다.

"19세기의 '가정 영역'은 정숙하고 순결한 곳이자 보살핌과 평온함이 지배하는 세계로, 때로는 거칠고 경쟁이 심한 남성성과 분리된 아늑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개념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권력과 권위를 여성과 어머니들이 일정 부분 행사할 수 있게 했고, 이는 남성들이 그 역할을 안정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던 시점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었다."(210쪽)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만행을 고발한 지 오래다. 그런데 간혹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의 전제인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고 지배적인 성별이라는 점을 훼손하곤 한다. IMF 같은 금융위기 사태가 대표적이다. 반면 전쟁이나 전염병, 자연재난은 바짝 쫄아든 가부장제를 되살리거나 회복시키는 강심제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는 때때로 남성성에 가차없이 흠집을 내곤 한다.

오늘날의 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제 질서하에 놓여있지만, 남성성의 위기는 심각한 지경이고 부성이나 부성애의 개념도 힘을 잃은지 좀 됐다. 가령 가정의 울타리 내에서 자녀 양육은 어머니의 전담 영역이 된지 오래고 (따라서 양육지침서와 진학 상담의 주요 대상은 어머니들이다) 아버지의 위상은 '고개숙인 남자'라는 상투적 표현만큼이나 곤두박질쳤다. 서구에선 19세기 중반부터 그러했다. 역사학자 어거스틴 세지윅의 지적대로, "본래 아버지를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보다 높은 자리에 놓고 그렸던 가족 초상화는 모든 구성원을 같은 높이에 둔 그림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헨리 8세, 미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에머슨과 소로,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밥 딜런 등 역사적 위인들이 어떤 아들이었고 어떤 아버지였는지를 살핀다. 이중 가장 아비다운 아비, 친절한 가부장제에 딱 들어맞는 자상한 아버지상을 하나 꼽는다면 '진화론의 아버지' 다윈일 것이다. 자녀 일곱을 거느린 다윈은 《바비아나》라는 꼼꼼한 자녀육아 기록을 남길만큼 정말 다정하고 헌신적인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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