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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ㅣ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문학과 미술의 콜라보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글과 그림 모두에 재능이 탁월했던 두 예술가의 이야기를 한 권에 담은 책이 나왔다. 문학가와 예술가를 한 권에 병치하는 '모티브 세계문화전집' 시리즈의 첫 번째 주자인데,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와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주인공이다. 공교롭게도 두 예술가는 영혼의 쌍둥이 같다. 성격과 기질 측면에서 매우 민감한 천재 예술가의 영혼을 서로 나눠 가졌다고 할까. 세속적인 성공이나 당대의 출세 여부에선 차이가 크지만, 두 예술가의 삶의 궤적이나 마음의 결은 흡사했다. 가령 둘 다 아버지가 신학자였고, 둘 다 우울증과 정신병을 앓았고, 영성에 대한 뚜렷한 감수성을 지녔고, 세상에서 쫓겨난 이방인 정체성을 품었다. 그리고 글과 그림이라는 이중의 재능이 빛을 발했다.
헤르만 헤세 박물관 관장인 티모 하일러는 헤세 문학의 성공 비결로 '영혼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 스타일과 타인과 바깥 세상을 향한 다정한 관심, 즉 '안부'에 주목한다. 그렇다, 내게 헤세의 작품은 폭풍우 치는 어두운 바다를 건너는 동안 길을 밝혀 주는 등대와 다를 바 없었다. 헤세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위기 극복에 봉사하는 글들"로 예술가로서의 영혼의 민낯을 보이고, 덕분에 독자들 역시 작품을 거울 삼아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성찰 기회를 얻는다.
한편, 타인과 바깥 세상을 향한 다정한 관심은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와 힘겨운 삶의 고백에 응하는 사만사천 통에 달하는 편지가 말해준다. 티모 하일러는 편지로 전하는 헤세의 '안부'를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의식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서, 헤세의 편지는 "독자들의 가장 다양한 주제와 문제에 대한극히 개인적인 입장 표명이었으며, 삶의 위기에서 보내온 도움 요청에, 불안과 절망과 질병에 건네는 응답이었다."
그간 헤세의 작품은 꽤 많이 접했지만, 청년 헤세가 자비 출판한 자전소설 『헤르만 라우셔』는 처음이다. 『헤르만 라우셔』는 세 개의 서문(1900·1907·1933), 「나의 유년시절」, 「잠 못 이루는 밤들」, 「1900년 일기」, 「마지막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1933년 군터 뵈머 삽화 포함 판본으로 국내엔 최초 공개다. 1900년 말, 스물 세살의 헤세는 자신이 일하던 바젤 라이히 서점의 이름을 출판 명의로 사용해 『헤르만 라우셔의 유고 산문과 시』를 자비 출간한다. 이 책을 독일 최고의 문학 출판인 자무엘 피셔가 주목하고, 헤세의 차기작이자 출세작인 『페터 카멘친트』(1904)가 출간된다. 이 소설의 성공으로 헤세는 스물 일곱의 나이에 전업작가가 된다.
그동안 『페터 카멘친트』가 『수레바퀴 아래서』(1906), 『데미안』(1917), 『싯다르타』(1922), 『황야의 이리』(1927)와 같은 대표작들의 '씨앗'으로 간주되었는데, 사실 이보다 앞서 『헤르만 라우셔의 유고 산문과 시』가 있었던 셈이다. 가령 「나의 유년시절」에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이 있고, 「1900년 일기」를 보면 『싯다르타』의 사상이 보이고, 「잠 못 이루는 밤들」에는 『황야의 이리』가 있다.
헤세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대명사인 반 고흐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두 예술가 모두 그린 바 있는 '해바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 해바라기는 영혼의 평안과 타인의 안부를 상징한다. 헤세는 정원에 해바라기를 가꾸었고, 반 고흐를 모티프로 한 소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도 해바라기가 등장한다. 반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에서 고갱이 오기를 기다리며 '노란 집'을 칠하고 해바라기 그림으로 고갱의 방을 꾸며주었다.
반 고흐는 820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고흐의 편지는 고흐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잘 보여주는 문학 그 자체다. 편지 대부분은 남동생 테오에게 보낸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안부였고, 다음에는 돈을 보내달라는 부탁이었고, 그다음에는 작업 보고였고, 그다음에는 예술론이었고, 마지막에는 자기 존재에 대한 변명"이었다. 당시 고흐는 부모님과의 불화로 힘들었고, 네 살 아래인 동생 테오는 예술을 사랑하는 동지적 후원자로서 고흐의 정신적, 경제적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때문에 가난한 무명화가 고흐는 동생의 경제적 지원을 항상 미안하고 또 고맙게 생각하여 영혼이라도 주어 갚고 싶다는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