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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폴 오스터의 유작 『바움가트너』(열린책들, 2026)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전적인 기록이다. 10년 전 아내를 잃고 환지통을 겪듯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다들 바움가트너가 작가의 분신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내 애나 블룸 역시 폴 오스터의 또다른 분신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서 부부는 지적인 동지이자 소울 메이트로 나온다. 바움가트너와 애나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관계였지만, 이들이 연애 시절 서로에게 보낸 편지는 "연애 편지가 아니라 지적이고 영적인 동지들 사이의 서신 교환이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평생 철학을 다룬 바움가트너가 평생 시문학과 번역을 다룬 아내를 애도하고 회고하는 과정이 이야기 전개의 핵인데, '철학과 문학의 신성한 결혼'이야말로 폴 오스터라는 이야기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정원사'나 '원예'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본다면, 소설 초반엔 전직 야구 선수이자 선량한 검침원으로 후반엔 조경사업가로 등장하는 에드 파파도풀로스 역시 작가의 또다른 소울 메이트이지 싶다.
바움가트너라는 이름이 독일어로 '나무 정원사'를 뜻하고, 아내 블룸의 이름이 '꽃'을 뜻하기 때문에, 글쓰기 행위가 나무와 꽃을 가꾸는 '원예'에 비유되기도 하고, 이 소설의 전반적인 구조가 가지를 치며 자라나는 한 그루 '나무'에 비유되기도 한다. 가령 역자 정영목은 이 책을 "언뜻 작아보이지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넓은 그늘을 만날 수 있는, 마치 한 그루 나무 같은" 소설이라고 해석한다. 이 소설이 나무라면, 여기에 열린 과실은 '기억', '애도', '회복', '사랑', '연결', '실존', '우연의 미학' 같은 것들이다.
십년 전 사랑하는 아내가 해변에서 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아내의 상실은 환지통과 같은 아픔과 기나긴 애도의 의식을 불러왔다. 남편이 택한 애도의 방식은 텍스트를 매개로 한 기억, 회복, 교감이었다. 아내의 미발표 원고를 출간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바움가트너는 사랑을 되새기고 잘 몰랐던 아내의 면모를 재발견한다. 또한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와중에 『운전대의 신비』란 책을 완성하는데, 이 책은 "인간 삶이란 외로움과 잠재적 죽음이라는 고속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통제불가능한 차라는 독한 비전으로부터" 태어났다. 말년의 철학자가 고통스런 상실과 회복의 개인사에 기반해 완성한 이 책은 문학을 향한 진실한 애도의 증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