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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로댕 - 개정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안상원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8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젊은 예술가에게는 두 가지 꼬리표가 붙기 마련이다. 바로 '고독'과 '가난'이다. 무명의 예술가가 유명해지고 궁핍에서 완전히 벗어났어도 고독만큼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명성과 부유함도 기다림과 외로움의 시간들만큼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는 예술 창작이 주는 행복감과 고양감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작품은 "위대한 사물들의 은총"과 다를 바 없다. 예술작품은 고통과 고독을 토양으로 삼아 피어나는 거룩한 인동초다.
건축, 그림, 조각 가운데 조각은 늘 뒷전이었다. 위대한 조각가의 절대적 아이콘은 미켈란젤로인데, 나는 미켈란젤로 대신에 조각가 로댕과 로댕 미술관을 파고 들었다. 무시할 수 없는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우선은 로댕의 뮤즈인 카미유 클로델 때문이었다. 카미유 클로델의 평전과 영화를 접했고 로댕을 연이어 질타하게 된다. 『릴케의 로댕』(미술문화, 2025)은 더 나중이었다. 중국어판을 먼저 읽었다. 이젠 영어판을 구해보고 싶다.
『릴케의 로댕』은 시인 릴케의 눈으로 포착한 조각가 로댕의 삶과 예술이 녹아있는 고전이다. 이 책은 예술적 감수성이 매우 뛰어난 시인이 쓴 '작가(로댕)론'이면서, 동시에 로댕이라는 거장의 거울을 빌어 재현된 릴케 특유의 '시학론'이기도 하다. 역자 안상원에 따르면, "릴케는 시인이면서 특이하게도 시보다는 조형예술로부터 자신의 시문학에 더 많은 자양을 얻곤 했다." 참고로 릴케의 아내 클라라 베스트호프도 조각가로, 한때 로댕의 제자였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작업하지만 조각가는 행동을 통해 작업한다. 행동의 언어는 육체였고, 시인의 언어는 사물이었다.
27세의 젊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2년 8월 파리에서 예순두 살의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만나 교류한다. 릴케가 로댕을 부단히 관찰하고 연구하며 깨달은 예술가로서의 자세는 "그의 내부에 있는 어두운 인내심", 조용하고 침착한 끈기였다. 릴케는 "무에서 시작하여 고요히 진지하게 충일에 이르는 넓은 길을 가는 자연의 위대한 인내와 무던함과 같은 것"을 로댕에게서 발견한다. 로댕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서두르지 않는 성실함이었다.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된다"가 로댕의 구두선이라면, 내 구두선은 "천천히 서둘러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