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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단단하게, 채근담 - 무너지지 않는 마음 공부
홍자성 지음, 최영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8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명청 시대 청언소품을 즐긴다. 청언소품의 대표 정전은 홍자성의 『채근담』이다. '채소 뿌리의 이야기'라는 『채근담』은 '동양의 탈무드' 혹은 '동양의 팡세'에 형용된다. 시대를 초월하여 한중일 식자층에게 널리 사랑받는 잠언집이다. 여전히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우리 사회의 힐링 열풍, 마음공부 열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책 제목 '채근'은 『소학』을 지은 왕신민의 '인상능교채근, 즉백사가성'이라는 말에서 따왔다. "사람이 채소의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라는 메시지다. 저자 홍자성은 명나라 만력제 연간의 문인으로, 본명은 홍응명, 호는 환초도인이다.
『채근담』은 동양의 영원불변한 최고의 자기계발서다. 총 356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물 뿌리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진리와 인정세태에 대한 깨달음이 압권이다. 내용상 유불선 삼교의 정수를 모두 담고 있다. 유가의 중용, 도가의 소요유, 벽암록의 공(空) 사상이 그러하다. 하지만 수신과 처세에 관한 논의는 도가적인 색채가 더 짙다. '환초도인'이라는 홍자성의 호처럼, 유유자적하는 도가적 삶의 태도를 입신양명보다 더 우선시한다. 즉 권세, 명리, 탐욕, 분쟁, 사치를 멀리하고 담박, 청렴, 무욕, 한적, 검소를 가까이하는 은일의 삶을 강조한다.
엮은이 최영환은 『채근담』을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절제의 길),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처세의 이치), 운명과 시련을 대하는 자세(역경 속의 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세상을 초월한 미학), 마음을 비우는 공부(백지의 여백에서), 세상을 비추는 눈(속세를 초월한 관조), 자연과 하나 된 삶(삶의 해탈)' 일곱 파트로 구성한다. 엮은이는 『채근담』의 핵심이 "마음을 다스리고 덕을 기르는 삶"이라며, 이는 "불교의 참선, 유교의 수양, 도교의 무위자연 사상과도 일맥상통" 하다고 높이 평한다. 다만 본문에서 본인 감상인 '철학 에세이'를 원전과 원전 풀이보다 더 우선시했다.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아무리 한글세대를 위한 편집본이라 해도 말이다.
"역경은 약이 되고, 순탄함은 칼이 된다"라는 대목과 "가장 아픈 상처는 가장 가까운 데서 온다"라는 대목의 감상이 맘에 와닿는다.
"삶은 고난 속에서 진정한 성장을 이룹니다. 역경은 때로 가시밭길처럼 아프고 날카롭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뜻을 굳게 하며, 삶의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반면, 평탄하고 안락한 환경은 겉보기엔 은혜 같지만, 우리의 정신을 무디게 하고 경계를 늦추게 합니다. 칼날이 곳곳에 있음에도 느끼지 못하는 이 무감각이야말로 진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고난을 피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데 있습니다."(128쪽)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냉정과 따뜻함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집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 가족이나 형제지간일수록 미묘한 감정의 골은 더 깊을 수 있습니다.
질투나 경쟁, 미묘한 비교심이 얽히면 정은 식고 말은 날카로워집니다. 이런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감정의 파도에 휘둘리기보다는 차갑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만이 번뇌의 늪에서 벗어나 조용한 내면을 지킬 수 있습니다."(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