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 영화 읽기 - 무성 영화부터 디지털 기술까지
마크 커즌스 지음, 윤용아 옮김 / 북스힐 / 2025년 6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영화계는 개판이지만 영화 자체는 너무 매력 있는 매체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명언이다. 영화판의 갑질과 야만적 관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90년대 천재 소리를 듣던 김기덕 감독의 만행을 떠올려 보라. 나는 할리우드 키드의 일원으로, 로렌 바콜의 이 말에 공감이 간다.
영화를 극장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영화다운 영화'를 극장 개봉 영화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영화를 보라. 내가 그동안 공들여 수집한 DVD 더미가 허탈해진다. 영화팬으로서의 내 첫사랑은 영국 출신의 코미디 배우 찰리 채플린에게서 멈춘다. 나는 X세대인데 성룡과 소피 마르소 이전에 채플린이 먼저였다. 영화 초창기 시절의 대표적인 천재 배우이자 감독인 채플린은 영화를 사랑하는 할리우드 키드들의 영원한 첫사랑일 것이다.
내 '영화 전작주의' 리스트의 시작도 채플린 작품이었다. 1921년 작품 <키드>에서 시작해 <황금광 시대>,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라임 라이트> 등을 섭렵했다. 192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채플린에 푹 빠져 있던 내가 전혀 주목하지 못했던 또다른 획기적인 영화 흐름들이 있었다. 가령 "스칸디나비아의 자연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 독일의 표현주의, 소비에트 연방의 편집, 일본의 정면 촬영 스타일 등"이 그것이다.
역사에서 탄생일은 나름 의미가 있는 법. 영화의 탄생일은 1895년 12월 28일이다. 이 날 세계 영화사에서 인정한 최초의 영화가 파리에서 유료 상영했다. 그중 매우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열차의 도착>이 시각적 충격으로 관객의 경탄을 자아냈다. 이 최초의 영화를 바로 다음 해에 관람한 아시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일본의 오사카, 태국의 방콕, 필리핀의 마닐라 관객들은 이 최초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고종도 못 본 영화를 방콕과 마닐라의 평민들이 극장에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게 의외였다. 19세기 말의 태국과 필리핀이 조선보다 훨씬 국제적인 시각과 기술적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한편, 특수효과를 사용한 최초의 SF영화는 1902년 <달세계 여행>이다. 역시 영화는 '집단적 꿈의 저장소'란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는 고전이다.
영국 북아일랜드의 영화감독, 영화평론가이자 작가인 마크 커즌스는 영화를 삐딱한 시선을 지닌 아웃사이더들의 '국제어'에 비유한다. "영화는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몽상가, 소외자, 이상주의자, 절규하는 자, 소심한 자의 국제어다." 그렇다, 영화는 충분히 추하고 불편한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매체의 문화적 가치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상가 한 명이 떠오른다. 바로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표현주의 작가 베르펠의 견해를 인용하는데, "영화의 참다운 의미와 가능성은 자연스러운 수단과 탁월한 설득력을 가지고 동화적인 것, 기적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그 특유의 능력에 있다."고 했다. 특히 철학적이거나 사회학적 상상력을 구비한 거장 감독은 형식주의, 사실주의, 표현주의, 이상주의 등 영화의 네 가지 상호 배타적인 요소를 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다. 가령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나 봉준호의 영화를 보면 혁신적인 영화의 요소를 반추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