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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새뮤얼 W. 프랭클린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5년 6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는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다. 시대정신이랄까, 유행이랄까. 생산성, 효율성, 창발성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스템도 무척 중시하는 으뜸 가치가 바로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경영과 교육은 물론 과학과 예술 등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신성시되곤 한다. 이런 창의성 숭배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이미 역사박물관에 봉인된 진부한 가치를 소생시키곤 하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민주주의가 강조한 평등 덕분에 가치가 많이 바랜 엘리트주의다. 천재나 영재 등 소수 엘리트와 탁월한 상상력 혹은 영감에 대한 높은 관심은 '창의성 숭배 사회'의 반작용이다. 물론 창의성은 천재성이나 지능과는 그 결이 다르다.
"창의성은 천재성보다 더 민주적이고, 지능보다 더 영웅적이며, 단순한 창의적 발명이나 재능보다 더 기발하고, 단순한 상상력이나 예술성보다 더 유용한 무언가를 상징했다. 창의성은 ㅡ적어도 창의성 연구자들이 상상하기로는ㅡ 군사적·문화적·정신적 진보를 연결하는 공통의 실이었으며, 과거의 에디슨과 미래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이어주는 개념이었다."(262쪽)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굴뚝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로 이동하면서, 창의성을 숭배하는 신자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그 배후에 심리학 분야를 주축으로 하는 학계의 창의성 연구 붐이 있었다. 창의성 연구가 심리학 분야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특히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을 자기실현의 핵심 요소로 보고, 창의성의 중요성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과 심리적 만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창의성 연구 결과가 평범한 대중이 자기혁신이나 자기실현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리라 낙관했다. 교육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이며, 모든 아이에게 창의적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관점을 확산시켰다. 그렇게 창의성은 숭고한 자기실현 욕구와 결합되었다. 한편, 학계 바깥에서는 브레인스토밍과 창의적인 인재를 활용하는 경영 기법 등이 창의성 운동가들에 의해 확대되었다.
자본주의는 교활하다. 창의성의 도구화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창의성이 시장의 마케팅 도구로 소비되며 상품화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성과 자기실현의 가치를 순조롭게 결합시켜, 개인의 자기실현 욕구를 기업의 혁신 동력으로 변질시켰다. 그 결과 탈진증후군이나 포모 증후군이 전염병처럼 범람하고 있다. 창의성 숭배의 역설 혹은 배신에 주목해야 할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