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말을 걸 때 - 아트 스토리텔러와 함께하는 예술 인문학 산책
이수정 지음 / 리스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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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예술의 가치는 아름다움에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다비드와 비너스는 유미주의자들의 영원한 뮤즈다. 그런데 이런 뮤즈는 감정이입이 불가능한 타자다. 흥분과 감동을 선사하지만 동화되지 않는다. 반면에 그림 속 인물이 마치 나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안개 바다의 방랑자>를 처음 보았을 때 그러했다. 먼 발치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객이 아니라 화폭 안으로 빨려들어가 화면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인간의 내면과 우주적 존재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바위 위에 홀로 선 남자의 뒷모습, 그의 앞에 펼쳐진 끝없는 안개 바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 이 모든 요소는 관람객에게 깊은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252쪽)

<안개 바다의 방랑자>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대표작이다. 오늘날에도 공익 캠페인이나 고전문학 책표지로 자주 활용되는 매우 유명한 그림이다. 아, 짬이 나면 <해변의 수도승>도 찾아보길 바란다. 역시 광활하고 장엄한 자연을 배경으로 거룩한 숭고미를 아낌없이 전하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이다. 두 작품 모두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자연관을 상기시킨다. 자연 경관과 숭고미를 강조한 낭만주의 화풍이 무척 맘에 든다. 숭고미 대신에 멜랑콜리한 감성을 강조한, 그래서 감미로운 위안을 주는 그림도 물론 좋아한다. 가령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그러하다.

유럽에서 낭만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한 예술 사조가 신고전주의다.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유럽에서 유행한 사조인데, 신고전주의의 대표화가는 자크 루이 다비드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다비드는 <호라티우스의 맹세>, <마라의 죽음>,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등이 있고, 앵그르는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터키탕>, <그랜드 오달리스크>,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 등이 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그림과 판타지 영화를 선호한다면, 1848년 영국에서 결성된 예술가 그룹 라파엘 전파를 빼놓을 수 없다.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중세적 순수함과 자연주의적 표현을 이상으로 삼았던 화가, 시인, 비평가들의 모임인데, 대표 화가로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등이 있다. 라파엘 전파의 중세 도상학적 이미지와 낭만적 미학은 현대 판타지 문학, 영화, 게임산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라파엘 전파는 19세기 영국의 전통적 화단에 반발하며 1400년대 이탈리아 예술의 강렬한 색감, 복합적인 구성, 풍부한 디테일을 추구했다. 이들은 신화, 전설, 문학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이후 영화, 문학,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190쪽)

라파엘 전파 예술가들의 예술적 이상을 구현한 대표 뮤즈는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시달은 로세티의 연인이기도 하다. 로세티의 <레지나 코르디움>과 존 에버렛 밀레이의 대표작 <오필리아> 모델이 모두 그녀다. <오필리아>는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그림이다. 화려한 드레스와 더불어 상징성을 지닌 꽃과 식물들이 등장하는데, 제비꽃 목걸이는 충절을, 늘어진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손 주변의 데이지는 순수함을, 뺨과 드레스 주변의 장미는 젊음을, 팬지는 헛된 사랑을, 양귀비는 죽음을 상징한다. 책은 후기 라파엘 전파의 대표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물약을 든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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