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절한 좌절
김경일.류한욱 지음 / 저녁달 / 2025년 5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이상적인 부모상은 '엄부자모', 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엄마다. 엄부자모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전형적인 양육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유구한 전통은 가정을 넘어 학교, 군대, 병원, 기업에까지 운용되었다. 적어도 70년대 출생한 X세대까지는 이런 방식이 잘 통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대다수 한국인들은 엄부자모의 역할 분담이 자녀들 성장발달에 도움이 되는 최적의 기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과 관식의 양육 방식도 엄부자모 스타일이다. 때때로 첫째 금명이를 두고 관식이가 자상한 돌보미 노릇을, 애순이가 엄격한 가장 노릇을 했을 뿐, 전체적인 육아방식은 그대로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급변했다. 엄부자모 방식은 대가족과 베이비부머 세대에나 어울리지 요즘처럼 1인가구와 저출산이 대세인 Z세대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부모가 된 X세대는 안정된 애착 유형을 신성시하는 육아 교과서를 떠받들었다. 그리고 그런 애착에 올인하는 양육의 전반적인 역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과거엔 애정 결핍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애착 과잉이 더 큰 문제다. 정서적 영양실조가 문제시되던 시대는 훌쩍 지나갔다. 오히려 지금은 애착 과잉에 의한 정서적 비만이 문제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과 소아정신과 의사 류한욱은 《적절한 좌절》(저녁달, 2025)에서 과도한 애정과 돌봄이 오히려 자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은 적절한 좌절의 부재와 분리-독립 과정의 실패다. 적절한 좌절은 건강한 자존감과 회복탄력성 단련에 필수적이고, 분리-독립 과정의 성공은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의 확립에 필수적이다. 결국 저자들은 애착 과잉이 정서적 비만, 칭찬 중독, 자의식 과잉, 병든 자기애로 찌든 문제 어른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애착 과잉의 부모가 정서적 비만인 자녀를 낳는다. 애착 과잉은 친밀함을 핑계로 "부모가 자녀에게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보호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가령 "자녀의 행동, 감정, 선택에 일일이 간섭하거나 대신 결정해주는 방식"이 그러하다. 정서적 비만 상태에 있는 아이들은 감정 조절에 취약하고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유리 멘탈이기에 종종 사소한 스트레스나 좌절로 인해 정신적인 파국 상황에 처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