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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 창작은 삶의 격랑에 맞서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마이클 페피엇 지음, 정미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마이클 페피엇은 세계적인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다. 60여 년간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평전, 인터뷰집, 칼럼 등 다양한 글을 썼고, 프랜시스 베이컨, 알베르토 자코메티, 크리스티안 샤드, 다도(미오드라그 두리치), 아리스티드 미욜을 비롯해 여러 작가의 전시회를 큐레이팅했다. 이 책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디자인하우스, 2025)은 미술평론계 최고 권위자인 마이클 페피엇이 마음 속에 품고 다니던 최상위 예술가 27인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서술이다. 반 고흐, 피카소, 달리 같은 대중에게 친숙한 거장들부터 오브리 비어즐리, 호안 미로, 베이컨, 자코메티, 앙리 미쇼 등이 소개된다.
저자는 20세기 거장들의 예술세계를 언급하면서 특히 "문학과 미술 사이의 교차수분"에 주목한다. 교차수분이란 식물이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아 수분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예술관과 작품세계에 끼친 영향이 대표적이다. 자코메티는 입체주의, 추상파, 초현실주의 운동을 거쳤고, 앙드레 브르통, 장 폴 사르트르, 장 주네 같은 문인들과 교류했다. 그래서 자코메티는 툭하면 실존주의 조각가라고 불리기도 하고, 초현실주의의 대표 조각가로 평가되곤 한다. 잘 알다시피 초현실주의는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1930년대에 본격화되었다. 화가이자 시인인 앙리 미쇼도 '교차수분'에 포함된 경우인데, 다만 LSD와 메스칼린 같은 환각제가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이 더 큰 이슈다.
저자가 추앙하는 개인적인 우상은 베이컨과 자코메티다. 신예 미술평론가 시절, 저자는 전후 유럽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를 "쌍둥이 수호신"으로 간주하며 "내 존재의 버팀목"으로 삼았다.
"내 마음을 끈 것은 그들의 예술이 아니라 삶이었다. 베이컨과 자코메티의 예술은 내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마치 폭풍우 치는 어두운 바다를 건너는 동안 길을 밝혀 주는 등대와도 같았다. 물론 지나친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힘겨운 순간에 이 두 예술가가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는 뜻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서 베이컨이라면 어떻게 할까? 본질로 압축된 뼈만 남은 자코메티의 조각들에서 어떤 힘을 끌어낼 수 있을까?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거나, 엉망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길을 찾기 위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3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