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런
모리 에토 지음, 이구름 옮김 / 모모 / 2025년 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람은 섬이 아니다. 아무리 연고가 없는 고아라도 나홀로 살아갈 수 없다. '어른다움'의 기본 사양인 자립과 홀로서기는 외로운 섬처럼 혹은 야생의 자연인처럼 홀로 살아가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라는 얘기다. 진정한 홀로서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자세, 남의 말을 경청하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우선된다. 스물두 살의 다마키는 매일 달리면서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다. 홀로 무작정 달리는 것이 아니라 팀을 이루어 함께 달리면서 목표를 완주하는 '홀로서는 삶의 태도'에 스며들게 된다.
일본 작가 모리 에토의 감동적인 성장소설 《런》(모모, 2025)은 '이계'가 등장하는 세카이계 판타지 소설이다. 부모와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잃고 고아 신세가 된 나쓰메 다마키는 나나미 이모와 함께 지내게 되지만, 그런 이모마저 몇 년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철저히 혈혈단신 신세가 된 다마키는 대학을 중퇴하고 마트 알바생으로 살아간다. 상실의 슬픔과 트라우마로 인해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다마키, 우연히 길냥이 고요미를 연으로 해서 근처 자전거포 '사이클 곤노'의 주인장과 친해지고 동병상련의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곤노 아저씨는 홀로 계신 병약한 노모를 보살피기 위해 자전거포를 접는데, 작별 선물로 멋진 로드 바이크 '모나미 1호'를 다마키에게 준다. 예전에 아들한테 주려고 가장 좋은 부품만을 엄선해 만든 바이크다.
그런데 이 모나미 1호가 신통하게도 명계와 하계를 잇는 '레인'을 타고 사후 세계를 넘나들게 해준다. 이승에 미련이 있는 망자들이 머무는 공간인 '퍼스트스테이지'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가족과 이모를 만나게 되고, 사후 세계의 법칙을 파악하자 모나미 1호의 원래 주인을 물색하게 된다. 곤노 아저씨의 부인과 아들이 이승의 미련을 지우고 말끔하게 환생하려면 자전거를 돌려줘야 한다. 이제 그리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레인을 넘나들 방법은 해가 지고 날이 바뀌기 전에 마라토너처럼 일정한 속도로 40킬로를 질주하는 길 외엔 없다.
하지만 타고난 저질 체력의 다마키가 40킬로 레인을 여섯 시간 내에 주파할 수 있을까. 나나미 이모는 망설이는 다마키를 부추겨 달리기에 도전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마키는 구레나룻의 사나이의 열혈 영입에 설득돼 러닝 팀 '이지러너즈'의 멤버가 된다. 멤버 여덟 모두 나름의 사연과 곡절이 있고, 코치를 제외하곤 다들 병아리 초짜들이다. 알고 보니 구레나룻의 사나이는 한때 전설적인 천재 러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