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스피치 스피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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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불은 지성과 문명의 상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큰어른 가운데 지성의 햇불을 가장 높이 들어 사회를 환하게 밝혀준 자유사상가로 능소 이어령 선생을 꼽을 수 있다. 내 눈에 능소 선생은 열성적인 '불의 멘토'이셨다. 한 전통 지혜에 따르면, 노련한 불의 멘토는 통찰의 불, 마음의 불, 창조의 불, 영혼의 불을 각각 지피게 된다. 이 네 개의 불은 능소 선생의 전반적인 지적 여정과 잘 맞물린다. 가령 《지성의 오성길》이 '통찰의 불' 시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마음의 불' 시기,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하고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것은 '창조의 불' 시기에 해당한다면,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영혼의 불'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능소 선생은 생명, 지혜, 기쁨을 노래한 긍정의 지식인이자 죽음마저 가르침으로 남기신 불굴의 인생교사이시다. 이 책 《이어령, 스피치 스피치》(열림원, 2025)는 선생의 수많은 대중강연 중 기업 경영인을 대상으로 한 아홉 편을 엄선했다. 농림수산식품부 특강(2010), 중앙공무원 교육 강연(2009),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총회(2009), 한국표준협회 대한민국창조경영인상 시상식 특별강연(2009) 등인데 저탄소 녹색성장과 창조적 상상력을 화두로 한 내용이 특색이다.

당시 녹색성장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전략이었다. 잘 알다시피, 경제와 생태는 전형적인 갈등 관계이고, 경제 원리와 정치 원리는 오랜 대립 관계다. 서구에서 GND(Green New Deal)로 불린 녹색성장은 녹색기술 개발을 통해 환경위기를 완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취지가 컸다. 강의록에서 자주 언급된 생명자본주의, 생체기술, 바이오미미크리, 세미오시스, 창조적 상상력 등 모두 "위기를 넘어 새로운 판을 짜는 비전"의 맥락에서 나온 주요 단어들이다.

한국인은 독창적인 뭔가가 있다. 세계인이 한글과 K문화에 빠져드는 이유다. 한국인이 가진 창조적 상상력은 연원이 깊다. 가령 배달문화는 한국인이 유목민이면서 농민이기 때문에 가능해진 문화다. 농처럼 '배달의 민족' 운운하지만, 기마민족의 DNA와 농경민족의 DNA를 함께 갖고 있기에 이같은 배달문화가 흥할 수 있었다. 벼농사를 짓는 동아시아 민족 가운데 누룽지와 숭늉 문화가 있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중국도 일본도 베트남도 누룽지를 먹거나 요리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어 버리는 한국인 특유의 창조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질적인 혹은 대립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비빔밥 문화나 디지로그적인 사고 역시 그러하다. 한국인의 이런 융합적 사고와 통섭 효과엔 대륙과 해양 문화의 회색지대라 할 수 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도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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