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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
오가와 사토시 지음, 최현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일본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소설을 쓸 때 반드시 이 소설을 통해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정한다. 연작 단편집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소미미디어, 2025)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의 화두는 다름아닌 '소설가란 것은 어떤 것인가'이다. 그래서 주인공으로 '소설가 오가와'가 등장하고, 그의 고교동창들과 여자친구, 편집자 같은 주변인물들이 소개된다.
독서를 좋아하는 소설가의 일상과 사유(사변적이고 철학적인 그런 류)를 다루기에 그만큼 여러 유명작가의 이름과 저서들이 나열되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은 엄청난 독서가인 동아리 선배에게 잘 보이려는 지인에게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빌려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달의 궁전》을 읽는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는 남자라면 애초에 사귀지 않는 게 낫지." 공감하는 바다. 폴 오스터가 취향이 아니라면 무척 가볍거나 경박한 스타일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잠깐 나를 어리둥절케 한 점은 솔 크립키의 분석철학 이야기가 크게 강조된다는 점인데, 이는 소설가 오가와가 현실은 무수한 가능세계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크립키의 견해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그리는 세계는 그런 무수한 가능세계의 원초적인 복원 실험일 수도 있다.
책은 총 여섯 편의 연작 단편이 등장한다. 〈프롤로그〉〈3월 10일〉〈소설가의 본보기〉〈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가짜〉〈수상 에세이〉다. 〈프롤로그〉는 대학원생이던 주인공이 소설가가 된 계기를 소개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신의 인생을 원그래프로 표현하시오"라는 애매한 출판사의 입사지원서 항목이 그를 소설가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블 만화책을 보다보면, 긍정인물과 부정인물, 선한 영웅과 악한 영웅이 나오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소설가 오가와의 이야기에는 그런 긍정인물이나 영웅인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남의 사생활에 무관심한 평범한 도회인이나 성공을 향해 내달리다 거짓이나 허영의 덫에 걸려드는 소시민적 인물의 몰락을 그린다. 이는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이 재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결함"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소설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오히려 아무 재능이 없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야."라는 말에, 뭐야 노벨상감 발언이잖아, 라는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