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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점심시간 ㅣ 다봄 어린이 문학 쏙 5
렉스 오글 지음, 정영임 옮김 / 다봄 / 2025년 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가난과 폭력은 어깨동무 사이다. 가난할수록 유치하고 찌질한 가정폭력이 미세먼지처럼 자욱한 법이다. 가난은 부모들을 주눅들게 하고 체념하게 하고 툭하면 욱하게 만든다. 자녀를 감정의 휴지통처럼 거칠게 사용하는 못난 부모들이 있다. 그래서 부모형제의 궁상과 싸구려 폭력이 지긋지긋해 가출을 일삼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 그러다 가출팸이 되면, 성매매나 절도, 강도, 상해와 같은 범죄의 먹잇감이나 조력자가 되곤 한다.
열세 살의 렉스는 학교가 집보다 훨씬 편했다. 머리가 똑똑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렉스는 수업이 즐거웠다. 다만 학교 생활에서 가장 불편하고 거북한 것이 점심시간이었다. 가난은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이빨에 낀 고춧가루처럼 화들짝 부끄럽게 만든다. 렉스의 여린 마음도 그랬다. 렉스는 점심시간마다 무료 급식 대상자라는 사실을 늙은 계산원에게 알리고 확인받아야 했다. 렉스는 리엄과 토드 같은 옛친구들이 알까 봐 겁이 난다. 가난과 궁상은 우정의 강물까지 흐린다. 5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 모두 풋볼 팀이 되면서 렉스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렉스는 엄마 루시아나와 샘 아저씨, 그리고 동생 포드와 같이 산다. 히스패닉계 엄마는 성깔이 사납고 정서적으로 불안해 감정 기복이 크다. 렉스의 눈에 엄마는 엄마나 어른처럼 보이지 않았다. 새아빠인 샘도 도긴개긴이다. 독일계 색슨족인 샘 아저씨는 말을 더듬고 욱하면 폭력을 휘두르곤 한다. 렉스는 자기도 나중에 엄마나 새아빠 같은 못난 어른이 될까봐 두렵다.
렉스가 차별과 폭력에도 삐뚤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외할머니의 사랑과 친구 이단의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렉스가 사랑하는 할머니는 나름 아메리칸 드림을 소박하게 이룬 멕시코계 이민 1세대였고, 손자를 사랑으로 보살필 줄 아는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한편, 점심 시간에 밥 친구로 새로 사귄 만화책 폐인 이단은 "같은 배트 시간에 같은 배트 기지에서 봅시다"란 '배트맨' 티브이 시리즈의 인삿말을 헤어질 때 내뱉는 똑똑한 괴짜다. 이단은 엑스맨을 가장 좋아하는데, 엑스맨이 자신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세상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단은 엑스맨처럼 지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모두를 도와주는 영웅이 좋았다.
렉스는 초능력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란 이단의 말에, "자기 자식을 때리는 사람들을 없애 버릴 거야"라고 답한다. "나쁜 녀석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해"라는 렉스의 말에, 이단은 "선한 사람들이 나쁜 녀석을 죽인다면 나쁜 사람들하고 다를 게 뭐야"라고 반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