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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 장영희 문장들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4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뒤늦은 깨달음이랄까. '봄날의 햇살'이란 말에 잘 어울리는 국내 작가를 발견했다. 늦었지만 찾았으니 정말 다행이다. 주인공은 영미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장영희 교수다. 번역가로서의 면모는 《종이시계》와 《슬픈 카페의 노래》를 통해서, 저술가로서의 면모는 《내 생애 단 한번》(샘터, 2000)과 《문학의 숲을 거닐다》(샘터, 2005)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 장영희가 '봄날의 햇살'이란 표현에 잘 어울리는 작가라는 점은 이번의 신간 《삶은 작은 것들로》(샘터, 2024) 덕분이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슬픔보다 기쁨을, 눈물 대신 미소를,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한 글들이 돋보인다.
이 책은 비록 엄동설한에 태어났지만 봄날의 축제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설레는 마음을 닮은 '인간 장영희'의 잠언집이다. 책의 표지와 테두리 장식을 놓고 보더라도, 노란 개나리 덤불로 치장한 것 같은, 마치 화사한 봄날의 들녁을 떠올리게 한다.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봄날의 온기와 내음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처음엔 색상이 은행잎을 닮았다 싶었는데, 정선된 아포리즘을 천천히 읽다보니 한여름의 뜨거운 열정이나 가을의 차분한 성숙보다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빛방울을 방출하는 봄날의 햇살이 떠올랐다. 생기발랄한 님의 눈부신 웃음 이미지와 더불어 말이다.
자그마한 문장을 음미하다 보면 지금 자리에 설령 음악이 흐르지 않더라도, 마치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악장이 들려오는 것 같다. 처음엔 귓가에 소곤소곤거리지만, 중반을 넘어서면 찬란한 희망의 음률이 진하게 울려퍼진다. 읽다보면 내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목발의 장애와 암이라는 심각한 질병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알지 못했던 개인적인 고뇌와 상처에도 불구하고, 장영희 님은 문학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통해 삶을 축복하고 인간의 선함을 긍정하는 휴머니즘을 전파한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등 작가의 여러 대표작에서 ‘자연, 인생, 당신, 사랑, 희망’이라는 다섯 키워드로 추린 문장들은 훤한 봄날의 언어, 화사한 축제의 언어들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 기실 세상 모든 글쟁이의 로망이지 싶다. 단언컨대, 인간 장영희가 쏘아올린 작은 글도 사랑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전하는 큰 힘을 지녔다. 자, 봄날의 햇살 같은 언어들을 여러분도 흠뻑 음미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