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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권력의 기술자, 시대의 조롱꾼 ㅣ 문화 평전 심포지엄 4
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최호영.김하락 옮김 / 북캠퍼스 / 2022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허구의 인물 가운데 인격의 전형처럼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오이디푸스, 햄릿, 돈키호테, 조르바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역사적 인물 가운데 인격의 전형이나 문제적 인물의 전형처럼 언급되는 위인이 있다. 가령 불온한 정치적 동물의 대명사로 마키아벨리와 조제프 푸셰가 독보적이다. 마키아벨리에게 '권력의 기술자', '시대의 조롱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조제프 푸셰에겐 '정치적 천재', '흑막의 음모가', '영원한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스위스의 역사학자 폴커 라인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데 르네상스 시대의 문제적 인물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평전을 집필했다. 다양한 정체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불온한 사상가 마키아벨리의 삶과 정치철학을 들려준다. 특히 1498년 여름부터 피렌체의 제2서기국 서기장으로 일하게 된 마키아벨리의 외교적 활약상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당시의 마키아벨리는 "'문란한' 공화국을 비판하고 종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신의 메시지 뒤에 숨겨진 정치적 음모를 폭로하는 사람"이었다.
마키아벨리는 1513년 《군주론》에서 완벽한 군주는 여우이자 사자여야 하며 속임수를 쓸 줄 알고 약속을 어길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군주론》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 바로 체사레 보르자다. 당대 잔혹하고 교활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군주 체사레 보르자와 벌인 협상 경험은 마키아벨리에겐 큰 소득이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성공 법칙에 대한 지식을 예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실 정치와 외교의 기술에서 도덕과 윤리의 가식을 벗겨낼 수 있었다. "정치가 도덕적이면 좋겠지만 정치가가 굳이 도덕군자일 필요는 없다"거나 "외교관으로 성공하려면 진실해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진실하면 안 된다"는 견해는 서기장 직무에서 얻어낸 값진 교훈이었다.
저자가 보기에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기술을 간파했으나 정작 권력은 없었던 사람, 이상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완벽한 공화국과 선한 삶을 믿었던 역설적인 인물이다. 정치적 위기의 시대에, 마키아벨리는 날카로운 정치적 센스와 풍자적 유머를 지닌 정치평론가이자 정치적 선교사로, 그러나 평화의 시대에는 재치있는 희극작가이자 권력자의 지적 광대로 인정받았다. 마키아벨리는 불온한 정치적 동물답게 격찬과 비난과 애증이 교차하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무정부주의자, 혁명론자, 군주의 조언자, 신념에 찬 공화주의자, 불가지론자, 냉소주의자, 이상주의자, 신화 창조자, 분석가 등이 그러하다.
마키아벨리는 '시대의 조롱꾼', '금기의 파괴자'이다.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등의 글에서는 "신랄한 조롱과 신성한 엄숙함, 격정과 풍자"가 드러난다. 가령 '성공은 모든 것의 척도다, 국가의 목표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다, 공화국의 최고 영광은 다른 국가를 정복하는 것이다, 완벽한 정치인은 파렴치할 줄 알아야 할뿐더러 속임수도 쓰고 계약도 파기할 줄 알아야 한다, 도덕과 정치는 절대적으로 대립한다, 보증된 도덕 규칙은 정치에서 무력할뿐더러 완전히 비생산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권력을 얻고 행사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은 그 지식을 전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가장 많은 특혜를 누린 파벌의 정상에 있는 메디치가의 지배는 진정한 공화국의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 등등, 극강의 현실적인 잠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