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존재의 역사 - 우주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138억 년의 거대사
팀 콜슨 지음, 이진구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팀 콜슨이 137억 7,000만 년에 걸친 우주 대서사시를 한 권에 담았다. 우주와 우리 은하, 태양계, 지구가 존재하게 된 서사를 통해서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생명체의 등장과 확산, 의식의 출현, 인류의 탄생까지 돌아본다.
저자의 기본 화두는 이거다. "우주가 탄생한 시점에서 우리의 존재는 필연적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우주의 탄생을 둘러싼 대표 논쟁이 바로 필연에 기반한 결정론적 우주론과 우연에 기반한 확률론적 우주론이다. 저자의 입장은 확률론적 우주론이다. 지구별과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하는 것은 운이 좋아서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 시간을 빨리 감기 방식으로 되돌려 빅뱅 이후를 완벽히 동일한 조건으로 재실험한다고 쳐도 지구도 인류도 달도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나는 인류가 없다면 우주도 별 의미가 없다고 보는 인본주의자이기에 오히려 인생을 유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신의 위대한 목적이나 창조주의 디자인 타령을 늘어놓던 종교와 미신의 시대, 봉건과 반계몽의 시대엔 결정론적 우주론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도 말그대로 '만능 과학자'가 되기는 힘들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 지구과학, 지질학, 천문학 등 우주의 탄생과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 스펙트럼이 광대하고 전문적인 과학지식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만능 과학자의 이미지는 오히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최초의 과학자를 꼽는다면 밀레토스의 탈레스가 유력하다.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 탈레스는 태양과 달의 지름 측정법, 1년을 365일로 통일, 동지와 하지의 발견, 지구설(땅이 구체의 형태를 띤다는 주장)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 가운데 지구가 평평하다는 지평설을 신봉하는 덜 떨어진 야만인도 있는 마당에, 탈레스는 참으로 놀랄만한 과학문해력을 보여주었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으로 세상과 사물의 원리를 이해한다. 잘 설계된 실험은 생각이나 가설을 검증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저자는 과학 지식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실 우리 모두가 '과학적 실험주의자'라고 강조한다. 흠, 참으로 듣기 좋은 소리다. 과학은 증거를 만들어 가설을 뒷받침하거나 논박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의 원인을 해명한다. 과학은 늘 증거로 말하고, 검증으로 이를 재확인한다. 나는 생강차를 즐겨 마시는데(지금도 마시면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저자는 생강이 암치료에 효능이 없다는 것이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히 밝혀졌다며 초를 친다. 하마터면 뿜을 뻔 했다.
저자는 자신이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여정을 들려준다. 그나마 내가 가장 잘 이해한 대목이지 싶다. 흥미롭게도, 저자의 박사논문 지도교수가 네 명이나 된다. 어디까지나 심사가 아니라 지도다. 영국의 존 로튼과 믹 크롤리, 미국의 찰리 캐넘과 스티브 퍼갤러다. 로튼은 만능 과학자로 자연세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훌륭한 자연사학자다. 크롤러는 식물을 연구하며, 생물학적 데이터에 통계적 접근 및 분석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분야의 전문가다. 캐넘은 숲을 대상으로 먹이그물의 영양소와 에너지의 흐름을 연구하는 생태학자다. 퍼갤러는 분석 모형을 설계하여 통찰을 이끌어내는 이론가다. 저자는 네 분의 멘토 덕분에 만능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좋은 과학자의 덕목으로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상상력이 풍부하되, 멋진 아이디어라도 기존의 지식에 반한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신봉하던 가설이 틀렸다는 사례가 제시되었을 때, 기꺼이 주장을 수정한다.
셋째, 근거에 기반하고, 건설적인 비판이 가능해야 한다."(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