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코 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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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이 말은 아마도 로맨스 소설이나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 엄마와 딸의 실제 관계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냉전상황보다 못한 엄마와 딸이 적지 않다. 엄마가 자녀를 보호하는 울타리일 수도 있고, 딸의 성장과 행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사노 요코에게 엄마 시즈코 상은 냉랭한 벽과 같은 존재였다. 남보다 못한 그런 애증과 반목의 관계였다.

엄마 시즈코 상은 현실적이고 생활력이 강했지만 장녀 요코에게는 꽤나 모질고 거칠고 냉랭했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던 요코는 네 살 무렵, 자신이 내민 손길을 엄마가 매정하게 뿌리쳤던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분명 그때부터 엄마를 향한 증오감이 서서이 싹을 틔었을 것이다. 엄마의 냉대와 불신 그리고 모멸은 그 증오의 싹에 거름이 되어주었다.

저자가 결혼을 서두르고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것도 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몸부림 아니었을까. 엄마와의 비뚤어진 관계는 진행형이다. 거의 관계를 끊다시피 했지만, 엄마가 치매에 걸리자 값비싼 실버타운에 모시게 된다. 의외로 얌전한 치매였다. 툭하면 집을 나가고 화를 내고 통장을 누가 훔쳐갔다는 그런 의심을 하지 않는, 또 간혹 흐린 정신에 장녀 요코에게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살가운 말을 던지기도 하는 그런 귀여운 치매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용서받았다고 느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온화해졌다. 나는 용서받았다. 어떤 인지를 넘어선 큰 힘이 작용한 용서였다. 나는 작아지고 뼈만 남은 엄마와 몇 번이나 서로 껴안고 흐느껴 울었다. 실컷 울고 나니 감기가 나았을 때의 아침 같은 기분이 들었다."(254쪽)

부모님의 관계나 아버지에 대한 추억,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감당한 이런저런 생활고, 일찍 세상을 떠난 오빠와 남동생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비롯해 자기 가족의 생활사를 이렇게 여과없이 과감히 들려줄 수 있는 작가의 강심장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요코 여사는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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