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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0월
평점 :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라는 두 수도자를 내세워 사색과 금욕의 길과 체험과 사랑의 길을 구현했다면, 한국 작가 한승원은 진성과 청화라는 두 비구니를 내세워 소승적 깨달음의 길과 대승적 깨달음의 길을 제시한다. 거칠게 말하면, 진성 스님이 나르치스와 같은 과이고, 청화 스님은 골트문트와 같은 부류다. 굳이 아쉬운 구석을 하나 꼬집자면, 헤세의 소설에선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의 진한 우정과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한승원의 소설에선 진성과 청화의 그런 도타운 사귐과 교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얼음과 불처럼 너무 대립적이랄까.
"달마 스님의 얼굴에는 왜 수염이 없느냐." 스승인 은선 스님이 진성 스님에게 건넨 화두다. 텁석부리인 달마에게 수염이 없다는 것은 무슨 언어도단인가. 진성의 속명은 강수남,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서 선생을 비롯한 어른들은 그녀에게 의사나 간호사, 교사와 같은 길을 조언했다. 하지만 진성은 부모의 반대, 만류와 회유를 단호히 뿌리치고 산에 올라 구도자의 길에 나선다. 진성은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는 직관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청정암의 은선 스님은 진성이 대학에 갈 것을 권유하고, 진성은 서울에서 새내기 대학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이 자신의 수행과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장처럼 느껴진다. 가령 머리에 먹물이 가득 든 복학생 선배 우종남이 그러하다.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우종남은 스스로를 강수남을 비구니 신분에서 구해줄 구원의 기사로 자처하면서 진성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사이비 교주급의 말빨이다.
"가장 사람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참답게 살아가는 겁니다. 사랑도 해보고, 미워도 해보고, 질투도 해보고, 입도 맞추어 보고, 이성의 맨살을 끌어안아도 보고, 아기도 낳아 보고, 그 아기가 퍼질러 댄 똥오줌도 주물러 보고, 그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이런저런 속된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기 세계를 차근차근히 건설해 나가야 합니다."(149쪽)
진성은 그래도 수행자의 본분에는 충실했다.
청화 스님은 진성 스님의 도반이다. 속명은 이순녀, 간호전문대학을 다니다 출가했다. 가끔 사내가 암자로 찾아와 청화 때문에 한바탕 난리부르스가 난다. 그만큼 도화살이 강한 민폐녀 이미지다. 아니지, '쾌걸'이라고 불러야 하나. 청화는 박현우라는 나쁜 남자 때문에 결국 파계하고 절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남자에게 버림을 받은 후엔 이리저리 떠돌면서 간호일을 보면서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찾아서" 보살행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