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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 - 방향 잃은 삶을 위한 철학 나침반
강용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현대인은 불안하다. 행복하지 못할까봐, 성공하지 못할까봐 불안불안하다. 불행이 유행이 된 듯한 현대인에게, 미래는 암울하고 현재는 우울하며 과거는 유감이다. 뭔가 불안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비법이나 묘약은 없을까. 철학자 강용수는 불안하고 불행하고 우울한 영혼들에게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을 제안한다.
대중의 눈에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니체는 허무주의자로 비춰진다. 그런데 얼핏 염세와 허무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사싱이 오히려 살아갈 의지와 용기를 고취시키고 분발시키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보다 섬세한 눈으로 살피면, 염세주의도 허무주의도 적극과 소극, 능동과 수동의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철학자 모두 좋은 태도, 건강한 관계, 의미 있는 삶, 자기다움에 관해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아포리즘을 남겼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둘 다 실존적 불안에 주목했다. 다만 그 해결책이 갈리는데, 쇼펜하우어가 '마이너스 해법'을 제시했다면, 니체는 '플러스 해법'을 제안했다. 쇼펜하우어는 불안과 고통을 잠식시키려면 의지를 억제하고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금욕주의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니체는 실존적 불안을 인간이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니체가 '힘에의 의지'나 '초인 사상'을 내세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다움을 강화하고 삶의 역경과 불안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니체는 전반적으로 쇼펜하우어보다 더 급진적이다. 니체는 진리, 신앙, 과학을 상대로 파산선고를 하기 때문이다. "진리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신은 죽었다" 등의 관점주의 선언이 그러하다. 관점주의는 절대적 진리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주어진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니체의 관점주의를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로 해석한다. 다원주의는 같은 사물을 달리 볼 가능성을 허용한다. 그렇다고 객관성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객관적인 인식은 더 많은 관점, 더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