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버드의 노래 - 흑인, 퀴어, 우아한 탐조자로 살아온 남자의 조용한 고백
크리스천 쿠퍼 지음, 김숲 옮김 / 동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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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다. 이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비상하는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철새처럼 성과 속의 경계를, 야생(자연)과 문명(인간)의 국경을 넘나들며 연결하는 메신저의 상징이기도 하다. 새는 아름답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오늘날 영국 속어로 '버드'가 '예쁜 여자'를 가리키는 이유다.

새를 유난히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 화가 존 제임스 오듀본이 대표적이다. 오듀본은 489종의 미국의 새를 관찰하고 435장에 달하는 그림을 남겼다. 마블 코믹스에서 작가이자 편집자로 일했던 크리스천 쿠퍼도 깃털 달린 아름다운 생명체를 무척 사랑하는 탐조인이다. 쿠퍼는 스스로를 "흑인이고 게이이며 SF와 판타지를 사랑하는 괴짜"로 소개하는데, 하버드대학교 탐조클럽의 회장을 맡기도 했고, 현재는 조류 보호단체인 뉴욕시 오듀본 협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블랙버드의 노래》(동녁, 2024)는 게이 흑인 탐조 활동가의 60년 삶을 회고하는 자서전이다. 이야기 테마는 크게 두 가지다. 인종(흑인)과 성정체성(게이)을 둘러싼 개인적 갈등과 번민, 그리고 탐조의 매력이다. 흑인이자 퀴어라는 이중의 억압구조에 시달린 저자가 공황장애나 중독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삶을 버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려서부터의 탐조 활동 덕분이었다. 아름다운 새들은 숨 막히는 벽장 속에서 저자를 꺼내주었다. 저자에게 탐조는 단순히 고상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피난처이자 해방의 탈출구인 셈이다. 책의 역자 김숲도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탐조인이다.

저자는 자신의 탐조 경험을 '탐조의 일곱 가지 즐거움'으로 정리하고, 이야기 중간중간 탐조 활동의 팁을 전수한다. 탐조의 일곱 가지 즐거움이란 '새들의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환경에 있는 것의 즐거움, 과학적 발견의 기쁨, 수집의 즐거움, 유혈 없는 사냥의 기쁨, 퍼즐을 푸는 기쁨, 유니콘 효과(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생명체를 마침내 직접 보게 되는 짜릿함)'다. 나같은 문외한이 보기에 탐조를 시작하는 동기로 매우 그럴듯하다. 그리고 탐조 팁으로 "유명하고 희귀한 새를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새가 아니라 이미 새를 찾고 있던 탐조인 무리를 찾는 것이다", "먼저, 맨눈으로 새를 찾는다. 그리고 시선을 고정한 채로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댄다. 절대 반대로 하지 말자" 등이 있다. 난 지금 쌍안경과 조류도감을 알아보고 있다.

탐조 경험은 소풍날의 보물 찾기 게임처럼 매력적이다. 비록 수면 부족과 체력 고갈을 기본으로 하는 남다른 끈기와 고생, 사랑과 지식을 요구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새의 아름다운 자태와 노랫소리가 이런 노고를 보상해준다. 뭔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가끔 관점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인종이나 성별, 성정체성도 매한가지 아닐까. 탐조의 세계에는 증오와 혐오, 차별이 없다.

"탐조는 당신의 시각을 바꿔놓을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더할 것이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할 것이다. 소리와 계절을, 멀리 떨어진 장소를, 우리를 초월하는 동시에 포용하는 야생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내 삶에서, 탐조는 경이로움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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