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서사원 영미 소설
패트리샤 박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울타리 제도가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와 피해, 모멸감을 주는 경우가 있다. 다문화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정책이나 제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징표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망고문' 그 자체인 것들도 있다. 아메리칸드림이나 코리안드림이 그러하다. '드림'을 이루려면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승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천에서 용 나오기 힘든 시절에는 형편에 맞는 꿈을 꾸는 게 더 현명하다. 독일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여기 다문화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이란 주술에 사로잡힌 명문고 우등생이 있다. 우등생의 아빠는 아메리칸드림에 희망고문을 당하다 세상을 등졌고, 엄마는 드림은 언감생심, 그냥 사는 처지에 따라 애써 버틸 뿐이다.

우등생의 이름은 알레한드라 김(앨리), 한국계 아르헨티나계 미국인 이민 2세다. 엄마 아빠 모두 아르헨티나 한인 2세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이민 1세대에 해당한다. 아빠 후안 김은 10대 때 미국에 왔다. 그 전엔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자랐고, 친부모에 의해 아동 노동을 강요받으며 노동력 착취의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엄마 베로니카는 지금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아빠의 누나인 윤아 고모와 개리 고모부는 잘 나가는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자녀로 마이클과 제이슨이 있다. 고모네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셈이다.

한국인과 미국 백인에게 '알레한드라'란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스페인에선 미국의 '제시카'만큼이나 흔한 이름이다. 문제는 퀸스에 거주하는 알레한드라가 이따끔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는 데 있다. 번화가에서 백인에게 '망할 중국놈(칭크)'이란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스페인어를 능란하게 쓰지만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고 라틴계에서 무시당하곤 한다.

퀸스에 거주하는 대다수 이민자 후손에게 아메리칸드림이란 그저 "돈과 음식, 보금자리"일 뿐이다. 온화한 성품의 아빠 후안은 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꿈을 크게 가지렴", "이 나라에서는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어." 하지만 정작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아빠는 심한 우울과 무기력에 잠식되어 끝내 7호선 선로에 투신했다. 아메리칸드림이 독이 된 경우다.

"퀸스 거주민들은 멍청하지도, 천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현실적일 뿐이었다. 이들은 전쟁, 기근, 빈곤 같은 온갖 끔찍한 일을 피해 자신의 모든 걸 버린 채 알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쳐 온 사람들의 후손이었다."(65쪽)

앨리는 두 명의 절친이 있다. 죽마고우인 빌리 디아즈와 고등학교 베프인 로럴 그린블라트-왓킨스다. 빌리는 도미니카 출신의 이민자 가족 출신이고 매력남 유형이다. 대학 입학 대신에 해병대를 선택한다. 로럴은 급진적인 사회운동가 기질이 다분한 유대계 백인이다. 로럴은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이슬람 여성들을 돕기 위해 여름방학 내내 아랍어를 공부할 정도다. 앨리의 지금 소원은 원하는 명문대에 진학해 퀸스 시궁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