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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1 : 몰락의 시대 - 진실을 밝혀내는 박종인의 역사 전쟁 ㅣ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 1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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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박종인은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 동력으로 '지성'과 '교류'를 꼽는다. 그리고 근대성의 특징으로 부와 군사력과 공동체 그리고 교류를 지목한다. 잘 알다시피, 서구에서 근대의 시작은 18세기다. 당시 유럽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발달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의 근대 맞이는 백 년이나 뒤늦었고 준비도 초라했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말 근대를 맞던 조선 사회는 정작 '지성과 교류' 이 두 역사 동력이 부재했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저자의 강도 높은 비판은 이른바 성군과 혼군을 가리지 않는다. 조선 후기 성군의 대명사는 정조대왕이다. 여기에 딴지를 걸 지식인과 대중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문예부흥을 일으킨 위대한 군주 정조가 정작 "성리학 이외 학문은 철저하게 탄압하고 사상 검열을 한 지식 독재자였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서, 정조에게 붙는 '문예부흥의 군주'나 '개혁 군주'라는 수식어가 기실 과대포장이라는 주장이다.
정조가 등장하는 사극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식인 무리로 '백탑파'가 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같은 북학파 지식인들이 그러하다. 이들 가운데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처럼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된 유생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을 등용한 것이 지적인 학술 진흥 차원이 아니라 '배우'를 키우는 그런 오락적 재미 차원이라는 정조의 술회가 가히 충격적이다.
조선 후기 혼군의 대명사는 고종이다. 젊은 정치 엘리트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에 대한 고종의 사후 조치만 보더라도 고종은 혼군의 대명사가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저자 역시 나와 같은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보수 지식인은 고종을 '개명군주'로 찬양한다. 국사 교과서에는 "고종이 헤이그밀사를 파견했다", "을사조약을 고종이 반대했다"는 애국지사적 차원의 고상한 말들이 나오지만, 정작 "조선은 러시아 보호국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종이 애원한 사실이나 "을사조약 직전 고종이 일본 공사 하야시로부터 뇌물 수수"라는 추악한 비리 사실은 빼먹었다는 일침을 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