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데이비드 켑 지음, 임재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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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문명의 상징이다. 어쩌다 정전을 알리는 고지가 뜨면 대뜸 냉장고와 수도부터 걱정이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는 전날 새로이 아이스크림 같은 냉동식품을 채워놓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전은 대개 두 시간 정도이지만, 뜻하지 않은 전력시설 고장으로 인해 시간이 늘어날 때도 있다. 살짝 열불이 일지만 그래도 그나마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이다. 그런데 만약 아파트 단지나 지역 차원이 아니라 국가나 전지구적 차원의 정전 사태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야말로 재난영화가 따로 없다. 어쩌면 재난 자체는 오히려 평화로울 수도 있다. 재난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 지옥같을 지도 모른다. 모두가 살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고 냉혹한 짐승이 되어가는 끝없는 추락 자체가 아수라일 것이다. 폭동과 약탈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다. 생존하려면 필사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미국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캡의 장편소설 《오로라》(문학세계사, 2024)는 전력이 무너진 세상의 아비규환을 다루고 있다. 지구의 전력망을 붕괴시킨 것은 태양에서 발생한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다. 평균적으로 150년마다 한 번씩 대형CME(코로나 질량 분출)가 지구를 강타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구인들은 태양과 지구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전력망의 붕괴로 전 세계가 암흑 천지로 돌변하고, 불을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은 순식간에 마비된다.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을 때는, 오히려 뭐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재난 시국에는 이런 마음가짐도 중요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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