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너무 낯선 나 - 정신건강의학이 포착하지 못한 복잡한 인간성에 대하여
레이첼 아비브 지음, 김유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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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크게 신경증과 정신증으로 구분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신경증을 주로 치료했다면, 정신의학은 주로 정신증을 치료한다. 거식증이나 강박증은 예전에 말하던 '히스테리'처럼 신경증에 해당하고, 조현병이나 조울증, 자폐증은 정신증에 해당한다. 정신분석의 한계는 명확하다. 한물간 프로이트류 정신분석의 뒤를 이은 계승자가 정신의학이다. 프로작 같은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에 의존하는 정신의학은 겉보기엔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중이나 전문가나 모두 정신건강의학의 한계에 대해선 꽤나 무지한 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인간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그리 깊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정신의학의 한계는 이중적이다. 가부장제나 과학주의 같은 문화 이데올로기적 한계가 명백하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 속담처럼 치료대상인 인간 정신의 본래적 복잡성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더구나 정신질환 치료의 실패와 약물 부작용은 때론 매우 치명적이다. 그렇다, 정신의학은 날카로운 양날의 검이다.

저널리스트 레이첼 아비브는 거식증, 우울증, 조현병, 산후 우울증, 경계선 인격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섯 환자들의 임상 보고서를 작성한다. 여기엔 거식증에 시달리던 저자 본인의 회고록이 포함되어 있다. 정신분석학자 힐데 브루흐에 따르면, 거식증은 "정체성과 개성을 찾기 위한 맹목적인 탐색"이다. 당시 여섯 살이던 레이첼의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이혼하고서 양육권을 다투던 부모의 가정불화에 기인한다.

나는 종교적 열정에 깊이 사로잡힌 인도 브라만 계급 출신의 여성 바푸의 사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선의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을 떠올렸다. 잘 알다시피, 명문가 태생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남존여비의 가부장제와 가혹한 시집살이에 시달리다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 요절이 차라리 허난설헌에게는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 요절하지 않았다면 바푸처럼 영성 신비주의나 조현병 같은 위태로운 정신질환에 빠져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문 출신의 바푸는 종교적인 헌신이 대단하고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여류 시인이다. 바푸는 16세기의 시인 미라바이에게 매혹되었는데, 결국 '신적 도취'에 빠진 미라바이와 유사한 인생행로를 걷게 된다.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픈 바푸에게 인도 특유의 가부장제나 냉담한 시댁살이는 심각한 스트레스였다. 서구의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한 인도 전문가들이 바푸에게 내린 진단명 조현병은 기실 바푸가 질식할 것만 같은 답답한 현실에서 자그마한 숨구멍을 트기 위한 고통의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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