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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러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여기 게임 사기꾼이 있다. 에디 펠슨에게 삶은 게임이다. 그것도 무승부가 존재하지 않는 제로섬 게임이다. 판돈을 걸기에 언제나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진지한 게임이 내기 당구 시합이다. 젊은 당구 허슬러 '패스트 에디'에게 당구장은 직장이자 놀이터였다. 그리고 네모난 당구대는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에디 펠슨에겐 세 명의 멘토가 있다. 오랜 사업 파트너인 찰리는 재능 있는 아들을 가르치듯 에디에게 당구를 가르쳤고, 비즈니스 감각이 남다른 능구렁이 승부사 버트는 당구하는 태도와 이른바 '개성'을 훈수했으며, 경제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새라는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당구 마니아에게 당구장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당구장은 시간대에 따라 무늬가 있는 허물을 벗듯 변태한다." 아침엔 교회나 허름한 성당이었다가, 오픈 준비를 하는 한낮의 나이트클럽이나 바였다가, 밤이 되면 눈 밝은 꾼들만 관람하는 치열한 경기장으로 둔갑한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출신의 에디는 찰리와 함께 미국 전역의 당구장을 돌아다니며 허슬 당구로 돈을 번다. 나인 볼, 뱅크풀, 스트레이트 풀, 원 포켓은 허슬러들이 하는 게임이다. 에디는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품고 있다. 실제로 에디는 원 포켓의 발명자 조니 베르게스를 이길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그러다가 시카고 최고의 허슬러로 명성이 자자한 미네소타 뚱보와 시합을 벌이게 된다. 뚱보는 지난 15년간 이 지역 최고의 스트레이트 풀 선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당구계의 대스타다. 에디는 뚱보와 무려 40시간 동안의 마라톤 시합을 벌인다. 결과는 대패다. 하늘을 찌르는 오만과 건방, 치기 어린 어리석음이 초래한 참사였다.
당구 허슬러는 두 부류로 나뉜다. 일류와 삼류. 에디는 본시 일류 허슬러였다. 그러나 매니저 찰리를 떠나고 방황을 일삼다가 점점 삼류 허슬러 신세로 전락한다.
"일류 허슬러는 돈을 벌 수 있는 반경이 한정적이긴 하지만, 벌 수 있는 액수는 제한이 없다. 삼류에 속하는 사람들은ㅡ드잡이나 근육 덩어리, 일용직 노동자들은ㅡ 야금야금 돈을 먹고 산다. 그들은 경계를 게을리하며, 그들 가운데에는 아주 가끔 돈 많은 주정뱅이들이 있기도 하다. 또 남자다움을 동경하는 남학생들과 젊음을 동경하는 중년의 남자들, 그리고 그들보다 더 삼류인 드잡이나 근육 덩어리, 일용직 노동자들도 있다. 그들은 한때 하찮은 하인으로 배정되어 아부나 일삼으며 절망스러운 삶을 살다가, 어느 시점에서 2달러짜리 암표상과 전문적인 술 행상꾼이라는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삶의 형식을 바꾼다."(114쪽)
나락의 길을 걷던 에디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민 건 프로 도박사 버트였다. 버트는 태생적으로 패배자인 인간들에 대해 설교한다. 그리고 에디에게 재능이 있지만 개성이 없다는 뼈아픈 조언을 해준다. 태생적인 루저는 자기 연민의 달인이고, 언제나 패배의 핑곗거리를 찾느라 골몰한다. 노련한 거간꾼 버트의 눈에 기고만장한 에디는 "절반은 패배자, 또 절반은 승자일 뿐"이다. 버트는 시합 주선의 댓가로 판돈에서 75프로의 몫을 요구한다. 과연 에디는 버트가 내민 동아줄을 잡고 일류 허슬러로 거듭날 수 있을까. 또 새라와의 애정사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