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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지구 산책 - 제15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 ㅣ 웅진책마을 120
정현혜 지음, 김상욱 그림 / 웅진주니어 / 2024년 6월
평점 :
지구별은 영혼의 학교다. 뉴에이지스러운 발언이지만, 지구별이 영혼의 수련장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 지구별이 일종의 감옥소, 즉 죄를 지은 외계인이 유배되는 장소라고 보는 시각은 어떨까. 나는 어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친척 어르신의 말에, 즉 내가 고아 출신이라는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상태에서 언젠가 내 친부모가 나를 찾아 데리러 올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곤 했다. 꽤나 외롭고 우울한 환상이었다.
뭐, 행복한 아이라면 그런 쓰잘 데 없는 환상을 품진 않겠지만, 문득 엄습하는 소년기의 우울감은 충분히 그런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특히 부모에게 맞은 날엔, 환상은 현실이 되었다. 또한 문어처럼 생긴 화성인의 지구 침공을 다룬 공상과학소설이나 녹색 피를 흘리는 파충류 외계인이 나오는 미드를 보고선, 부모님이 실은 통통한 생쥐에 입맛을 다시는 그런 외계인이 아닐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특히 단식투쟁하는 나를 냅두고, 자기들끼리 게걸스럽게 식사하는 모습에 어떤 커다란 검은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환상은 이불킥을 차게 만드는 확신이 되었다.
작가 정현혜의 동화 《모리와 지구 산책》(웅진주니어, 2024)에도 지구인과 외계인이라는 이중 신분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소녀가 등장한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도예리는 실은 고향별 '스카우르나'에서 죄를 지어 지구살이 10년 형을 선고 받은 외계인 '아뜨레토리모'다. 죄수가 있으면 당연히 간수도 있는 법. 예리에게는 변신술에 능하고 지혜로운 멘토 '리스토'가 있다. 예리는 조만간 형 집행이 정지된다. 형벌이 끝나면 그동안 관계를 맺었던 모든 지구인의 기억에서 예리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지구 탈출' 100일 카운트가 막 시작된 예리에게 리스토는 혹시 지구에 남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지 묻는다. 학교에선 왕따를 당하고, 집에선 밤새 싫은 공부를 해야하는 초등학생의 삶이 지긋지긋한 예리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삶이 고달프면 누구나 환상을 찾게 된다. 초등학생 예리처럼, 지구별의 삶이 실은 형벌이고 자신은 죄를 지은 외계인이라는 환상 자체는 범천에서 죄를 짓고 내려온 선녀 전설처럼 자극적이고 달콤한 구석이 있다. 더구나 이런 환상의 이면에는 언제나 이미, 마음을 다친 지구인이 매우 잊기 쉬운 너무나 극명한 아름다운 진실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