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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ㅣ EBS CLASS ⓔ
고미숙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평점 :
"세계의 본질을 인식한 사람은 죽음 속에서 삶을 보지만 또한 삶 속에서도 죽음을 본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세계의 본질을 인식한 사람, 그들을 가리켜 '현자'라고 한다. 중생에게 죽음은 고통이자 재앙이지만, 현자에게 죽음은 선물이자 축복이다. 중생에게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지만, 현자에게 죽음은 존재의 해방이다. 중생에게 죽음은 상실이지만, 현자에게 죽음은 자유다. 중생에게 죽음은 슬픈 이별이지만, 현자에게 죽음은 명랑한 여행이다.
인문학자 고미숙은 소크라테스부터 붓다까지 동서양 현자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깊은 차원을 드러낸다. 8인의 현자들은 문명권도 다르고, 살아간 시대도 다르고, 타고난 품성도 서로 달랐지만, 이들의 삶과 죽음은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자의 삶은 충만했고 죽음은 평온했다.
영혼불멸을 믿는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적 삶이란 곧 죽음의 연습이었다. 테스형은 독배 앞에서 어떤 미련도 회한도 없었다. 양생술의 대가인 장자에게 삶과 죽음은 대립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음은 천지라는 큰 집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선물이었다. 불꽃과도 같은 치열한 삶을 산 간디에게 죽음은 영광스러운 해방이었다. 암살자의 총탄이 그의 심장을 관통하는 순간에도 만트라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동맥류라는 난치병이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과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아하게 받아들였다.
조선의 대문장가 연암 박지원에게 죽음은 애도와 치유의 장이었고, 조선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에게 죽음은 먼 훗날 역사의 증언을 위한 출구였다. 어쩌면 다산에게 죽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헌신함에 따른 천주의 은총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리뿟따와 붓다에게 죽음은 욕망과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킨 지극한 고요와 평정에 이르는 '반열반'이었다. 참고로,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라마의 환생담까지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