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해피 - 행복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스테퍼니 해리슨 지음, 정미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행복은 후회없는 만족이라고 했다. 그럴려면 행복감의 크기가 너무 크면 곤란하다. 로또 당첨이나 사업 대박처럼 큰 행복은 우울감과 허무감을 불러오기 쉽다. 쓰나미처럼 몰려온 행복의 절정이 지나가면 이내 짙은 안개와 같은 권태감에 휩싸일 수 있다. 마이클 잭슨 같은 유명 스타의 삶을 잠시 떠올려보라. 결국 철학자 플라톤의 생각이 옳았다. "최고의 행복은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행복은 언제나 크기보다 빈도가 훨씬 중요한 법이고,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확행'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기본이다. 나는 쭉 그렇게 생각해왔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준말이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집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만든 말이다. 낡은 레코드 수집이나 마라톤 완주 뒤의 시원한 맥주 같은 매우 개인적인 취미 생활의 참맛을 강조하면서 꺼내든 표현이지만, 이내 국민 표어 수준의 대유행을 불러일으켰다. 대중 미디어가 행복의 소시민적 가치관을 논할 때면 동네 치킨집의 양념소스처럼 '소확행'이란 말이 흩뿌려졌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는 하루키의 말에 나는 꽤 오랫동안 공감했다.

그런데 '소확행'도 결국은 소비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주입시킨 '낡은 행복'의 틀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강하게 품게 되었다. 긍정심리학 전도사 스테퍼니 해리슨의 '뉴해피'라는 개념 덕분이다. 저자는 낡은 행복(Old Happy)과 새로운 행복(New Happy) 을 구분하면서, 성공과 성취, 지배와 소유에 방점을 찍은 낡은 행복은 오히려 진정한 행복의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지적한다. 대신에, 사랑과 봉사, 보편적인 인간성 추구에 방점을 찍은 새로운 행복을 '뉴해피'라고 불렀다. 내가 보기에, 낡은 행복이 이기적이고 사적인 행복관이라면, 뉴해피는 이타적이고 공적인 행복관이다.

낡은 행복은 개인주의, 자본주의,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에 근거한 그릇된 행복관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행복은 인간을 이기주의자로 만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게 다 낡은 행복의 문화 혹은 세계관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의 측면을 지적한 게 아닌가 싶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전형적인 관종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낡은 행복의 세속적 가치관 탓이다. 돈, 유명세, 팔로워 숫자, 세련된 이미지 등으로 행복한 삶을 연출하곤 하는데, 이게 다 낡은 행복의 표상들이다. 반면에, 저자는 뉴해피라는 세계관으로 행복의 공적인 이타적 속성과 사회적인 웰빙 차원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