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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 불완전한 진화 아래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질서
앤디 돕슨 지음, 정미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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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가 향한 곳은 이기심도, 다정함도 아니었다." 아니,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과학 칼럼니스트 앤디 돕슨은 "진화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이다"라며 진화의 단점과 약점을 들추어낸다.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이나 '진화생물학'하면 곧잘 공작새의 멋진 꼬리를 떠올리며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오묘함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대개가 딱 거기까지다. 정작 진화의 별난 성질에 대해선 그리 깊이 숙고하지 않는다.
가령 치타와 가젤 같은 포식자와 먹잇감의 관계를 놓고 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승자와 패자의 관점에서 먹이사슬 관계를 이해한다. 그래서 포식자 치타보단 먹잇감 가젤이나 영양에 연민과 동정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의 눈으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치타와 가젤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쪽은 사실 가젤이다. 최상위 포식자는 사냥감을 잡는 데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왜냐, 포식자는 끼니를 놓칠 위험만 감수할 뿐이지만 먹잇감은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초원의 포식자가 사냥에 성공하는 일은 그만큼 예외적이고 일상적이지 않다. 어떤 면에서 먹잇감이 되는 것은 득이 되는 일이다. 정말 타격감이 상당한 사실이지 않은가. 여기 놀라운 사실 하나 더 추가요. "가장 매력적인 숫컷이 가장 일찍 죽는다."
저자의 주요 관심 분야는 진드시, 숙주와 병원체, 물벼룩과 박테리아, 야생 동물의 복잡한 생태 시스템을 설명하는 시뮬레이션 모델 구축이다. 이 책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포레스트북스, 2024)는 고래를 비롯해 코끼리, 꿀벌, 뻐꾸기, 박테리아 등 다양한 생물들의 진화와 성선택 및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그의 첫 저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주로 "진화의 함정, 커다란 장벽, 사각지대, 절충안, 타협, 실패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약하자면, 진화는 불완전하다. 간혹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약점을 만들어내며 상호 파괴적인 방식을 보이기도 하는 게 바로 진화다. 가령 고래가 수중 생물로 진화한 것은 수백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왜 고래는 아직도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가. 다시 말해, 왜 고래에게는 아가미가 없을까. 궁금하다면 좀 시간을 들여 진화생물학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