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의 나라 - 왜 우리는 분열하고 뒤섞이며 확장하는가
문소영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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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론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혼종적 정체성을 다룬 인문교양서가 나왔다. X세대 출신의 문화 저널리스트 문소영은 한국을 '이상하고 아름다운 혼종의 나라'로 간주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BTS로 대표할 수 있는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와 한국 문화 혁신의 원동력으로 혼종성 혹은 잡종성을 꼽는다. 혼종성은 탈식민주의 문화이론의 핵심 개념인데, 여기서 혼종적 정체성은 유동적이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하며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요상한 '짬뽕' 이미지다. 저자는 '돈, 손절과 리셋, 반지성주의, 하이브리드 한류, 신개념 전통, 일상의 마이크로 정치, 포스트 코로나와 인공지능'이라는 일곱 개의 키워드로 한국 문화(인문ㆍ예술ㆍ대중문화 영역)의 혼종적 특성을 살피고 있는데, 탈식민주의나 비판이론적 색채가 강하지는 않다. 참고로 이 책은 〈중앙일보〉 칼럼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에 연재한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혼종적 특성을 발현한 본격 세대로 X세대를 강조하는데, 나 역시 공감하는 바다. X세대는 일명 '샌드위치 세대'라 불린다. 이는 집단적 이념성이 강한 '86세대'와 개인주의의 화신인 'MZ 세대' 사이에 '낀 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생 시기에 배낭여행의 붐을 타고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서구 다문화주의와 탈식민주의의 세례를 받고, 졸업과 동시에 IMF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사회 초년병이었던 터라 그만큼 혼종적 특성에 대한 문화적 촉이 매우 예민한 편이다. 저자가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다루고 있지만, 한국의 혼종적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분야는 현대 건축물이라 하겠다. 가령 청와대 본관 인테리어는 좋게 말해서 '절충주의 양식'이지만 기실 유럽풍과 한국식, 서구에 대한 동경과 민족적 자존심,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기이한 혼종체다.

저자는 한국이 경제와 문화에 있어서 이미 '대국'인데 일반 대중의 마인드 자체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강의 기적'이나 '고도 압축 성장'이라는 장미빛 문구 밑에 깔린 암울한 그림자다. 한국의 슈퍼 엘리트 계층에서 '갑질'과 '내로남불'만 판을 치지, 정작 고상한 귀족문화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과도 연관이 있다. 자본주의가 전통적 가치관과 이념을 대체했고, 가치관의 아노미적 상태에서 일반 소시민이 믿고 섬기는 숭배 대상은 종교에서 자본(상품, 화폐, 소비)으로 넘어갔다. 물론 여전히 가족과 지역 공동체 차원에선 유교적 집단주의적 가치관과 서구의 자유주의나 개인주의 가치관이 혼재해 갈등과 모순을 빚고 있지만 말이다. 특히 국내 정치판은 그런 가치관 충돌과 분열 갈등의 최전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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