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철학 - 어제의 고민을 오늘의 지혜로 바꾸는
피터 케이브 지음, 서종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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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을 매우 사랑하지만 정작 철학자는 사랑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니체의 철학을 사랑한다고 해서 플라톤과 니체를 사랑할 필요는 전혀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철학도 출신은 아니더라도 맹렬히 사랑하고 추앙하는 사상가는 정말 적지 않다. 카프카, 니코스 카잔차키스, 김수영, 무라카미 하루키, 로맹 가리, 폴 오스터 등 매우 매우 많다. 흠, 그러고 보니, 단지 학과 전공을 기준으로 철학자와 사상가를 구분짓는 것은 꽤나 협소한 시각이다. 정작 강단 철학자 출신이라면 어떨까?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나만의 '지극히 사적인 철학자' 리스트를 당당히 물색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여기 철학자가 철학자(사상가)로 인정하는 시인과 작가들이 있다. 휴머니즘 철학의 전도사 피터 케이브는 시인 사포, 소설가 루이스 캐럴, 아이리스 머독,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를 당당히 철학자의 만신전에 포함시킨다. 얼핏 보아도, 명분이 충분하다. 우선 사포는 레즈비언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빌려 쓰고 싶을 정도의 급진 페미니스트의 역사적 선구이다. 자유연애를 강조하고 실천한 철학자 러셀과 사르트르가 '누나'라 부르고, 시몬 드 보부와르가 '언니'라 부르며 따르고 싶어하는 인물이 사포 아닐까 싶다. 가부장제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과감히 에로티시즘을 선보인 선구적 사상가가 바로 사포다. 단지 남겨진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같은 엄청 유명한 철학 동화를 남긴 작가다. 잘 알다시피 루이스 캐럴은 필명이고, 본명은 찰스 럿위지 도지슨, 본업은 19세기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그리고 성직자였다. 과학자들이 앨리스 이야기에서 양자역학이나 카오스 이론을 떠올린다면, 철학자들은 과연 어떤 주제들을 뇌리에 떠올릴까? 피터 케이브에 따르면, 캐럴의 철학 동화는 "한 사람의 개인적 동일성, 시간의 본질, 사물과 특징의 관계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논한 실체, 특수자와 보편자의 관계에 관한 의문점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캐럴은 언어와 논리를 강조한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분석철학의 대가다. 만약 철학자 캐럴처럼 생각하고 싶다면 어찌 해야 하나. 저자왈, "철학적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한편, 《바다여 바다여》(1978)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아이리스 머독은 이런 달콤한 말을 남겼다. "구원을 바라는 자는 글을 쓰거나 극장에 가는 대신 별을 바라보고 철학을 이야기해야 한다." 너무 멋진 말 아닌가. 이 말 때문에 철학자 리스트에 선택되었다고 생각될 정도다. 도덕철학에 대한 짙은 관심을 잘 보여준《선의 주권》(1970)이란 철학서도 썼는데, "아름다움을 비롯한 객관적 가치를 추구했던 플라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머독 철학의 중심 주제는 '자아 벗어던지기'란다. 머독은 자유분방한 의지 개념을 강조하는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와 프랑스 실존주의와는 다른 결의 도덕철학을 주장했다. 논리실증주의는 객관적 사실의 존재 여부를 부정하는 회의론에 빠지기 쉽고, 자유의지를 너무 중시하는 실존주의는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상대주의에 취약하다.

끝으로, 베케트의 경우는 여러분이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길 바란다. 저자가 과연 어떤 색깔의 철학 이야기를 들려줄지 설레지 않는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나 《몰로이》를 읽고 나서 다시 본편을 읽어 본다면 좋을 것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이 고도를 기다리듯 그렇게 베케트의 철학을 기다리는 독자가 하나 늘면 그것대로 뿌듯한 일 아니겠는가. 그게 내 짧은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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