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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 간신학 ㅣ 간신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4년 2월
평점 :
김영수의 '간신 시리즈'는 읽을 때 주의해야 한다. 자칫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폭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두 번 접하는 인간 말종 이야기가 아니라 역대 극악무도한 간신의 수법을 적나라하게 수집한 백과전서 형태의 '간신 탐구서'이기에 그러하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면과 이타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간신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이기적인 면을 극악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자들이다. 여기서 '극악의 수준'이란 치밀하고 악랄하고 끈질기고 다양하고 전방위적이라는 얘기다. 간신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책 《간신: 간신학》(창해, 2024)은 간신의 간악한 수법만을 따로 모은 탐구서다. 70개의 '간신의 기술'과 더불어 역대 간신 약 100명의 엽기 변태적인 간행을 선보인다. 저자 김영수는 간신이 구사하는 다종다양한 수법을 '간사모략'이라 부른다. 그리고 "간사한 자들의 행적과 행동양태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그에 대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애써 강조한다. 간신은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약한 심리를 철저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옛말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간신들의 보편적인 간사모략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여러 간신의 기술 가운데, 저자가 제일 처음 제시하는 것은 '대간사충, 대사사신'이다. 큰 간신과 큰 속임수는 충성스러워 보이고 믿음직해 보인다는 뜻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무릎을 절로 치게 만든다. '큰 간신은 충신처럼 보인다'는 대간사충에 비하면 '말은 꿀 발린 것처럼 달콤하지만 뱃속에는 검을 감추고 있다'는 구밀복검이나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는 소리장도는 양반이다.
역대 간신은 오늘날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흉악 범죄자들의 선조격이다. 나는 사서에 등장하는 이런저런 간신 유형이 현대인이 조심해야 할 네 가지 문제적 인간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로 '어둠의 성격 4총사'로 불리는 사이코패스, 사디스트, 자기도취증 환자, 마키아벨리스트다. 특히 사이코패스와 마키아벨리스트가 간신배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피상적 매력, 병적인 거짓말, 후회 혹은 죄책감 결여, 반사회적 행동, 자기중심성, 공감능력 결여 등이다. 마키아벨리스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아니즘은 대인관계에서 표리부동한 스타일, 도덕성에 대한 냉소적 무시, 사리사욕과 개인적 이득에 초점 맞추기 등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어둠의 성격 4총사가 조직 내에서 권력을 잡을 때 이른바 간신이 된다고 보면 된다.
간사모략의 마인드를 '간신 마인드'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불가에서 말하는 육도윤회 개념을 빌린다면, 간신 마인드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육도 가운데 '인간 마인드'를 저버린 나머지 다섯 상태가 아닐까 싶다. 불가의 육도는 마음 상태를 지시하기도 한다. 가령 간신배가 뭔가에 상처를 받으면 마음이 지옥처럼 변해 화와 공격성을 쏟아내고, 만족을 모르는 아귀처럼 변해 끊임없이 뭔가를 갈구하기만 하고, 축생처럼 탐욕과 성욕에 빠져들거나, 아수라처럼 자기보다 잘난 이들에겐 사악한 질투심을 쏟아내고, 자기에게 아부하거나 아끼는 이들에겐 막 퍼주곤 한다. 결국, 간신이란 인간 마인드를 상실한 말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