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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자연주의 작가의 책을 제법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착각이었다. '배리 로페즈(1945~2020)'란 이름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더구나 55년간 80여개 나라를 여행하며 20권이 넘는 책을 펴낸 베리 로페즈가 글에서 언급하는, 자연과 야생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동지들의 이름은 더욱 낯설었다. 저자를 비롯해서, 글속에 등장하는 이들 거개가 '유목형 인간'들이다. 인류학자, 사냥꾼, 탐험가, 생태작가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북하우스, 2024)는 저자의 마지막 에세이집이다. 번역본의 부제는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이다. 작가 리베카 솔닛은 그런 저자의 삶을 "평생 성배를 찾아디니는 여정"으로 요약한다. 그리고 "그의 글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고 구원의 힘에 대한 더 넓은 인식을 직조해낸다"고 설명한다. 생명애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자연, 야생, 장소, 풍경을 마주하는 저자의 진지한 태도와 노하우가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풍경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세 가지 방법 혹은 수칙이 존재한다. 첫 번째 수칙은 주의 기울이기, 두 번째 수칙은 인내하기, 그리고 세 번째 수칙은 몸이 아는 것을 귀담아 듣기다.
"풍경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첫 번째 방법이 부단히 주의를 기울이기, 사건 밖에 더 있으려는 충동을 누르고 사건 안에 머무르며 사건의 의미가 차차 풀려나오기를 기다리기라면, 내가 익힌 두 번째 방법은 내가 얼마나 자주 몸에게 자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하는지, 바깥 세계의 질감과 내용을 감각하고 빛깔과 색조를 분별하는 몸의 특별한 능력을 이성적 사고가 어떻게 묵살하는지 인식하기였다."(195쪽)
방법 자체가 마음챙김의 열린 명상과 꼭 닮았다. 저자는 자연의 모든 장소가 '알려짐'에 열려 있고, 어떤 장소를 알아가려는 굳은 의지는 끊임없이 보상을 받는다고 조언한다. 그게 바로 '사랑'의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반면에, 편리와 이윤, 발달에 집중한 산업주의가 대량파괴한 것이 바로 이런 자연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랑이다.
"사랑에 실패했다는 증거는 우리 주위에 어디에나 있다. 지금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숙고하는 자는 컴컴한 암초와 절망의 벽에 부딪힌다.ㅍ참해ㅡ해양 산성화, 기업의 부정행위, 정부의 부패, 끝없는 전쟁ㅡ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면, 어떤 것이 유의미한 삶인지 새롭게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는다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으로 꾸역꾸역 버티게 될 뿐이다. 황홀과 박애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시작해야 하고,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더 큰 포용력을 탐색해나가야 한다. 낡은 생각ㅡ민족국가 유지라는 참담한 악행, 타인에 대한 배려는 유약한 짓이고 베풂은 아둔한 행동이라는 생명 유린적 생각ㅡ으로는 기대할 미래가 없다."(253, 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