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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쓸모있는 화학 이야기
이광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3년 12월
평점 :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이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연예인 가십과 건강 정보가 바로 그런 발 없는 말이다. 웃긴 건, 천리를 요란하게 내달린 발 없는 말이 돌연 아무런 흔적도 없이 뿅하고 사라지는 경우다. 남 얘기 할 것 없이 나부터 그런 우스운 경험이 있다. 보통 구충제는 일 년에 딱 한 번 먹을 뿐이지만, 한때 삼 개월간 구충제를 집중적으로 먹은 적이 있다. 이른바 구충제 메가도스다. 유튜브에 나오는 구충제 전도사의 말을 듣고 열심히 먹다 보면 정말 발뒤꿈치 각질이 말랑말랑해지고 보들보들해지는 좋은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이런 게 구충제의 신비한 부작용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의사나 과학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복잡한 화학작용으로 암같은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묘약이 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다. '발 없는 구충제 말'의 결론은 다들 잘 아시리라 본다. 구충제는 구충제일 뿐이고, 험한 지역에 미식 여행을 다니는 모험왕이 아니라면 요즘은 먹을 필요성이 거의 없는 그런 약이다. 실패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는 이는 실로 비범한 자다. 나는 구충제를 접고 난 후, 비타민C란 말로 금세 갈아탔고, 이 년 동안 내리 달리다가 신장결석으로 빠르게 접었기 때문이다. 이젠 '메가도스'란 말만 들어도 기가 찬다. 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제대로 된 '화학 창문'이 아닐까 싶다.
화학자 이광렬은 《재미있고 쓸모있는 화학 이야기》에서 괴담과 유언비어에 휘둘리지 말고 '화학 창문'으로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을 들여다 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 '뇌가 만드는 감정과 심리의 화학 작용', '모르면 독, 약과 식품 속의 화학이야기', '생활의 달인 만드는 살림 속 실용 화학', '뷰티와 다이어트에 쓸모 있는 화학의 능력', '자녀 양육에 써먹는 화학의 원리' 등을 통해 과학적 지식을 알려준다.
"저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창문이 과학적으로 100%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을 가지고 세상 사물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고, 이 관점은 지식 수준을 높여 가면서 계속 보정, 수정, 발전을 시키면 되니까요."(132쪽)
음식에 관한 괴담과 낭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탄 음식이 암을 유발하고, 콩으로 만든 음식이 남성호르몬을 줄이고, 죽염은 오히려 몸에 좋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비싼 소금도 결국은 나트륨이고, 싸구려 설탕보다도 몸에 해롭다. 소금과 설탕 중에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설탕을 택한다는 의사도 있고, 그 의사는 김치를 먹지 않는다 했다. 우리는 소금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몸에 폐해를 끼치는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나트륨 과다 섭취는 심장병, 치매, 중풍, 신장병, 신장결석, 위암, 골다공증, 비만 등의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상식을 무시하면 안 된다.
매운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엔돌핀 추구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매운 음식은 혀에 강한 통증을 주는데, 이 통증을 줄이기 위해 엔돌핀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엔돌핀은 기분 좋은 자극이 있을 때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분비된다. 달리기 중독자의 '러너스 하이'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그 고양감의 지속 시간이 짧다는 데 있다. 잘 알다시피, 엔돌핀은 '내 몸이 만드는 합법적인 마약'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현대 사회는 "치열한 경쟁과 바쁜 생활이 만들어 낸 슬픈 엔돌핀 중독 사회"라는 저자의 평을 누구나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