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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곱슬 이대로가 좋아 ㅣ Wow 그래픽노블
클라리벨 A. 오르테가 지음, 로즈 부삼라 그림,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23년 12월
평점 :
어릴 때의 별명은 이른바 '고민거리'나 '급소'를 겨냥하기 마련이다. 별명이 악질일수록 그러하다. 나는 '튀기'라고 불리곤 했다. 튀기는 '혼혈'이나 '잡종'의 다른 말이다. 교정에 들어서면 거대한 전신거울이 하나 있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머리는 다른 아이들과 너무나 차이가 났다. 눈부시게 노랬던 것이다. 피부가 하얗고 머리가 노래서 거울을 마주하기가 너무 싫었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칠흙처럼 검은 머리'를 엄청 부러워하곤 했다.
그래서그런지 타고난 곱슬머리 때문에 골치 아픈 주인공 마를린의 처지가 이해가 되었다. 사춘기 소녀라면 누구나 외모에 민감하기 마련인데, 가까운 친지는 물론 학교 친구들도 마를린의 곱슬머리를 문제시하고 조롱한다. '언제나 든든한 내편'이라 할 수 있는 단짝 카밀라가 있지만, 카밀라의 조언이나 해결책은 그리 미덥지 못하다. 잘 알다시피, 사춘기는 또래집단에 유난히 약한 팔랑귀를 가졌다. 자기가 보기 싫더라도 또래들이 보기에 좋다고 하면 다시 좋아보이는 게 사춘기다. 반대로, 내가 보기 좋더라도 또래들이 보기 싫다고 하면 금새 그만두고 싶어지는 게 역시 사춘기다.
마를린은 미국에 사는 도미니카 소녀다. 미술과 역사 과목을 좋아하고, 〈슈퍼 프렌즈〉에 나오는 멕시코 배우 둘체 마리아의 찐팬이다. 마를린의 엄마와 이모도 모두 곱슬머리지만, 곱슬머리를 대하는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엄마는 직모를 선호해 매주 일요일마다 마를린을 데리고 미용실에 간다. 마치 종교 행사에 참석하는 것처럼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이다. 엄마에겐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정작 마를린에겐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다. 반면에 루비 이모는 곱슬머리의 장점을 대폭 살리는 방식으로 손질하는 데 선수다. 마를린에게 이모는 곱슬머리 손질법을 알려주고, 결국은 엄마마저 설복시키게 된다. 그런데 곱슬머리를 흑인 정체성의 대표적인 표지로 내세우는 것은 조금 오버가 아닐까 싶다. 사춘기에겐 머리 말고도 고민할 건덕지가 엄청 많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