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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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쇼핑에 중독된 혼탁한 사회다. OTT 영상물로 밤을 새는 시대가 되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다. '활자중독자'로 자처하던 내가 드라마 '무빙'을 보기 위해 날밤을 샜으니 말이다. 돌연 현타가 온다. 아, 나는 '영상중독자'가 되었구나. 재미난 영상물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요즘, 누가 시집을 손에 잡겠는가. 어쩌면 시인조차 나처럼 영상중독자가 되어버리진 않았을까. 그런데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이처럼 요란하고 짤막한 영상물이 범람하는 지금이야말로 시 문학이 가장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가장 최근에 내가 읽은 시집은 박노해 시인의 『너의 하늘을 보아』(느린걸음, 2022)였다. 여기에 장석주 시인의 시평론집 『지금은 시가 필요할 때』(나무생각, 2023)를 한 권 더하니, 그나마 활자중독자로서의 근성과 존심을 지켜낸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이 올라온다.

시란 무엇인가. 시의 효용을 따진다면, 시는 언제나 내게 영양제이면서 해독제였다. 소아과 의사 출신이던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처럼, 나는 시를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약'으로 본다. 시인은 마음의 멍을 치유하고 병든 영혼을 달래는 그런 '마음과 의사'다. 장석주 시인은 도가적인 입장에서 시의 유용함을 바라본다. "시는 무위에 헌신하는 일, 아무 쓸모가 없는 아름다움을 구하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시가 가진 좋은 약성이 바로 그런 헌신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또한 시는 개인의 무의식은 물론, 당대의 집단 무의식과 욕망에 기반한 시대의 다양한 무늬를 드러낸다.

"좋은 시는 지층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사유의 속도와 운동이 그 지층을 뚫는데, 이 속도와 운동 속에, 찰나를 증언하는 번개의 빛에, 시는 있다."(11쪽)

저자는 스물 아홉 분의 시인을 소개한다. 김승희, 이기성, 이병일, 유진목, 이원, 유계영, 오은 등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의 시편에서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보는 능력, 의외성을 가진 이미지들, 무의식에서 솟는 돌연한 감정들, 다양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들, 이제까지 없던 음악, 어디서 오는지 모를 에너지, 순진무구한 주문, 기다림과 숙고와 완전한 몰입" 같은 것을 만끽할 수 있다. 이들 시인이 길어 올린 시는 "불행과 격투를 마다하지 않는 시, 낡은 사물이나 생각을 바꾸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 청춘의 착란 속에서 빛나는 미래 비전을 담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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