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미래 - 오래된 집을 순례하다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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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덕분에 오래된 집을 순례했다. '가온건축'의 임형남과 노은주 부부 덕분이다. '가온'은 '가운데'의 순우리말이자, '집의 평온함'을 뜻한다. 내가 보기에, 집은 세 가지 차원의 의미가 있다. 비바람을 막는 '생존'의 차원, 먹고 사는 '생활'의 차원, 그리고 자기 수양과 인격 도야의 '철학'의 차원이 그러하다.

저자의 말대로, 집은 생각으로 짓는 것이고, 모든 집은 의미가 있다. 집의 이름을 '당호'라고 한다. 가령 남명 조식의 '산천재'는 주역의 대축괘에 나오는 말로, '산속에 하늘이 담긴 집'이라는 뜻이다. 평생 학자로 살아간 조식은 61세에 지은 집에 "산속에서 창조적인 학문의 힘을 키운다"는 뜻을 담았다. 이처럼 집은 주인의 생각과 철학을 담는다.

특히 철학적 지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공간은 바로 서원이다. 서원은 사림이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의 공간이었다.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해 사람을 키우는 사립학교의 성격을 가진 곳이 서원인데, 안향에서 시작되어 이색과 정몽주를 거쳐 김종직과 이황으로 이어지는 한국 성리학의 학맥을 잇는다.

부석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소수서원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경과 애정이 적당한 위치와 드러나지 않는 은근한 위계를 통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서애 유성룡을 모신 병산서원은 누구나 한국 건축의 백미로 꼽는 아름다운 서원으로, '예'에 기반해 "의관을 단정히 정제한 선비처럼 반듯하고 엄격하다." 그리고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은 '경'에 입각한 쌍방향의 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어 수용자의 자세에 반응하는 열린 구성을 보인다.

집은 세상의 배꼽과도 같다. 삶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은 우리가 삶의 무늬를 그리기 시작하는 보금자리다. 그 보금자리가 아늑해야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심성과 태도가 길러진다. 지금 자신의 집을 여행지 살피듯 찬찬히 둘러보라. 어떠한가, 정말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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